고대사

얼음으로 만든 항공모함? 제2차 세계대전의 기상천외한 '하바쿡 프로젝트'

제2차 세계대전 중 구상된 기발한 무기 프로젝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상력 넘치고 대담했던 계획을 꼽으라면 단연 하바쿡 프로젝트(Project Habbakuk)입니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얼음으로 만든 항공모함이었습니다.

항공모함의 시대가 열리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영국 왕립해군(Royal Navy)의 힘이 드세자, 독일이 여전히 강대한 위협이던 초기와 달리 전황은 다소 안정을 찾았습니다. 비스마르크호의 출현이나 무엇보다도 U보트(잠수함)의 위협이 여전히 걱정거리였지만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합군은 항공모함의 뛰어난 범용성을 본격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편 독일 해군(Kriegsmarine)에서는 4척이 계획되었지만 단 1척만 건조되었는데, 히틀러가 항공모함의 유용성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고, 괴링 역시 공군(Luftwaffe)의 관할권에 누구도 간섭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연합군 항공부대는 해군과 협력해 작전 반경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영국의 언론인이자 발명가인 제프리 나다니엘 조지프 파이크(Geoffrey Nathaniel Joseph Pyke)의 상상력이 개입하게 됩니다.

기인(奇人), 제프리 파이크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파이크는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icle)의 특파원으로 베를린에 머물렀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됩니다. 수개월간의 감금 생활 동안 책을 읽으며 버텼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영화 한 장면 같은 기발한 탈출극을 감행, 잉글랜드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흥미로운 회고록으로 남겼습니다.

얼음으로 만든 항공모함? 제2차 세계대전의 기상천외한  하바쿡 프로젝트

전간기에 파이크는 언론에 대한 관심을 접고 교육학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개별화 교육, 창의성 함양, 처벌의 부재 등 스페인의 자유교육기관(Institución Libre de Enseñanza)과 흡사한 진보적 교육 이념을 담은 학교를 세웠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 정신에 아직 사로잡혀 있던 영국 사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학교는 실패하며 그는 파산과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이때 의외의 구원자가 나타니니, 바로 나치였습니다.

파이크는 독일의 팽창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우던 열렬한 운동가였습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영국 자발적 산업 원조(British Voluntary Industrial Aid) 단체와 함께 영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공화파 지원 캠페인을 벌이고, 쟁기나 매트리스 같은 일용품을 모금하는 한편, 오토바이 옆차를 개조한 구급차 같은 독특한 물건들을 발명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격한 응급 처치법(이끼를 자루에 담아 드레싱으로 사용하는 방식 등)을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1939년에는 일행과 함께 골퍼 행세를 하며 독일을 방문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 나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제 생각을 알아보려 했습니다. 전쟁 발발로 조사는 완료되지 못했지만, 작성된 보고서는 런던 정부에 제출되었고, 여기에는 두 민족의 여론을 공개적으로 대결시키자는 선구적인 선전 활용 제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기 발명가로서의 걸작들

하지만 이 독특한 인물에게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은 단연 무기 발명입니다. 마이크를 단 풍선을 띄워 삼각측량으로 적기의 위치를 추적하는 장비(레이더의 등장으로 무의미해짐), 노르웨이 전선용 설상 병력 수송 차량 설계 등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전례 없는 하바쿡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계획은 1930년 독일 과학자 게르케 폰 발덴부르크(Gerke von Waldenburg)가 제안했던 아이디어를 되살려 구체화한 것이었습니다.

핵심 소재, 파이크리트

처음 구상은 빙산을 그대로 활용해 그 위에 활주로를 평탄하게 깎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빙산은 대부분의 얼음이 수면 아래에 잠겨 있을뿐더러, 스스로 뒤집히는 성질마저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결책은 파이크가 직접 개발해 자신의 이름을 붙인 소재, 즉 톱밥이나 목재 펄프 14%에 얼음 86%를 섞은 '파이크리트(Pykrete)'에 있었습니다.

얼음으로 만든 항공모함? 제2차 세계대전의 기상천외한  하바쿡 프로젝트

이 소재로 거대한 크기의 항공모함(얼음을 생산하는 냉동 설비를 갖춰야 했기 때문)을 건조할 계획이었습니다. 콘크리트에 필적하는 경도, 낮은 융해 속도, 섬유질 구조가 주는 뛰어난 응력 저항성 덕분에 사실상 침몰 불가능했고, U보트의 어뢰 공격에 대해서도 무적이나 다름없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설계 사양은 선체 두께 12미터, 전장 1,200미터, 갑판 길이 610미터, 배수량 200만 톤, 엔진 26기, 길이 30미터의 방향타에 이르렀습니다. 항속 거리는 7,000마일에 달했고, 폭격기를 포함해 15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예정이었습니다.

캐나다 호숫가의 시제품

캐나다 앨버타주의 파트리샤 호수(Patricia Lake)가 길이 18미터, 폭 9미터, 무게 1,000톤 규모의 시제품 제작과 시험이 이뤄진 장소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실물 크기의 함선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초기 계산에 따르면 목재 펄프 30만 톤, 단열 섬유판 2만 5,000톤, 목재 3만 5,000톤, 강철 1만 톤이 필요했고, 비용은 약 70만 파운드로 추산되었으나 이후 재산산되어 250만 파운드로 불어났습니다.

좌초된 프로젝트, 몰락한 발명가

막대한 물자 수요가 다른 군수 필요에 지장을 초래했고, 파이크와 미국 측 협력진 간의 갈등(결국 파이크는 프로젝트에서 하차)까지 겹치면서 계획은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시제품의 잔해는 오늘날에도 호수 밑바닥에 잠들어 있습니다. 파이크는 좌익 성향의 사상 때문에 소련과의 유착 의혹이라는 은근한 비방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연료 부족 대책(페달로 움직이는 기차라는 기발한 아이디어 등)으로 새로운 제안을 내놓고 유니세프(UNICEF) 창설을 지지했지만, 더 이상 아무도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우울증에 빠졌고, 1948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