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평범한 시민들이 남긴 개인적 기록에 대한 관심은 안네 프랑크의 사례가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전선, 특히 레닌그라드 포위전 기간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타티아나 사비체바(Tatiana Savicheva)의 일기입니다. 그녀는 몇 페이지 안팎의 짧은 글로 그 참혹한 전쟁 속에서 겪은 체험을 기록으로 남긴 러시아 소녀였습니다.
타티아나는 제빵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녀가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세 딸과 두 아들, 다섯 아이를 키워야 했습니다. 전쟁 초기 독일 국방군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미하일만 요행히 도시를 떠날 수 있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레닌그라드에 남았습니다. 가족들은 최전선이든 공장이든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 방어에 보탬이 되었습니다. 한편 누이 니나는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다가 예고 없이 라도가호 방면으로 대피하게 되어, 가족들에게는 죽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차르의 겨울 궁정이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리던 이 도시는 1941년 독일군에게 포위당해 거의 3년에 달하는 혹독한 포위전을 겪게 됩니다. 독일군은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는데, 레닌그라드의 물자 사정이 절박했음에도 호수 주변에 보급 통로를 열어 필수 물자를 불안정하지만 나름 꾸준히 들여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굶주림은 주민들을 집어삼켰고, 전사자 외에 추위와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 결국 희생자 수는 무려 약 7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끔찍하고 파괴적인 상황 속에서 니나의 실종은 당시 열한 살이던 타티아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녀는 니나의 노트를 물려받게 됩니다. 소녀는 이미 자신만의 일기를 갖고 있었지만, 난방용 화덕의 연료로 태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노트만은 간직했고, 1941년 12월 28일부터 그 페이지에 짧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안네 프랑크처럼 경험을 차분히 서술한 것이 아니라, 겨우 십여 문장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가족 부고(訃告)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친척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난 날짜를 적은 아홉 개의 문장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섬뜩할 만큼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 제냐는 1941년 12월 28일 낮 12시 30분에 죽었다.
- 할머니는 1942년 1월 25일 오후 3시에 죽으셨다.
- 레카는 1942년 3월 17일 새벽 5시에 죽었다.
- 바샤 삼촌은 1942년 4월 13일 자정 두 시간 후에 죽었다.
- 랴샤 삼촌은 1942년 5월 10일 오후 4시에 죽었다.
- 어머니는 1942년 5월 13일 오전 7시 30분에 죽으셨다.
- 사비체바 가족은 모두 죽었다.
- 모두 죽었다.
- 타니아만 남았다.
실제로 마지막까지 삶을 붙잡고 버틴 것은 그녀뿐이었습니다. 1942년 여름, 폭격으로 무너진 잔해 속에서 구조된 타티아나는 남서쪽 약 20km 지점에 있는 크라스니 보르로 대피합니다. 몇 달 뒤 이곳에서는 반격에 나선 붉은 군대와 스페인 청색 사단의 지원을 받는 독일군 제50군단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전세가 추축국에 불리하게 기우는 동안, 어린 타티아나 역시 생존을 위한 사투에서 점점 기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녀가 머물던 고아원의 교사는 전쟁 초에 레닌그라드를 떠난 형 미하일에게 편지를 보내, 소녀가 병세가 매우 위중하다고 알렸습니다.

결국 그녀는 입원해야 할 만큼 아팠고, 그곳에서 인생의 마지막 길을 걷게 됩니다. 타티아나 사비체바는 1944년 7월 1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언니 니나(위 사진에서 미하일과 함께 있는 인물)가 집 폐허에서 건져낸, 그녀의 친필로 쓰여진 처량한 종이 조각들만이 그녀의 고난을 증언하는 유일한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이 일기는 독일의 침공으로 고통받은 러시아 국민의 참상을 보여주는 증거품 중 하나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검찰 측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그 짧은 일기는 오늘날 레닌그라드 방어 박물관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타티아나의 기억은 조국 안에서는 추념 시설로, 그리고 우주에서는 1971년에 발견되어 그녀의 이름을 딴 소행성으로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