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 포로수용소에 갇힌 군견 주디의 놀라운 이야기

이곳에서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전쟁에 참여한 동물들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유명한 군마들, 코끼리를 상대로 사용된 불붙은 돼지들, 고양이를 이용해 도시를 정복한 사례 등을 다루었죠. 오늘 살펴볼 사례는 조금 다릅니다. 주인공이 전투 참여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전쟁 포로로 공식 등록된 유일한 개로 역사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암컷이었고, 이름은 주디(Judy)였습니다.

상하이 거리에서 군함으로: 주디의 시작

원래 이름은 슈도(Shudo)였습니다. 1936년 2월, 영국인 주인들의 동물을 위한 상하이의 한 켄넬에서 태어난 순종 흰색 포인터로 갈색 반점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혈통견이랄 수 있죠. 하지만 생후 3개월도 안 되어 도망쳤고, 한 상인에게 구조되어 6개월까지 자랐습니다. 이후 새 주인과 선원들 사이의 다툼 끝에 다시 켄넬로 돌아왔지만, 부모 개들은 이미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해 가을, 양쯔강을 순찰하던 포함 HMS 그나트(Gnat)의 승무원들이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건독(gundog), 즉 사냥개로 훈련시키려는 의도였죠. 하지만 중국 길거리에서 자란 슈도는 사냥개 자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립 해군 함정의 전통대로 단순한 마스코트, '배의 개'로 대우받게 되었습니다. 선원이자 선내 정육 담당이던 탱키(Tankey) 쿠퍼가 그녀를 돌보았습니다.

승무원의 일원이 되다

새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전, 주디는 첫 시련을 겪습니다. 강에 떨어진 것이죠. 즉시 구조되어 큰 일은 없었지만, 일지에 '개 낙수'가 아닌 '사람 낙수(man overboard)'로 기록되었습니다. 일종의 세례식이었고, 이로써 주디는 정식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사실 주디는 사냥은 못 해도 다른 배들을 조기에 감지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해치를 닫고 경계 태세를 갖출 시간을 벌어주었죠. 한밤중 해적선의 기습을 경보로 알려 격퇴한 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저공 비행 일본군 항공기를 짖어대며 미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 말 전운이 감도는 시기, 주디의 능력은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주디는 쥬장(주장) 근처 순찰 중 표범의 습격에서 제프리 상병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목줄을 강하게 당겨 방향을 바꾸게 했고, 제프리가 정신을 차렸을 땐 표범이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죠.

유쾌한 에피소드들: 종을 훔친 개, 국제 결혼식

1937년 말, 영국과 미국 승무원의 작은 파티 후 주디가 미군 포함 USS 피치(Peach)에 남겨진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 배가 출항한 뒤 뒤늦게 사실을 알고 돌아왔지만, 미국 측은 주디가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그날 밤 주디는 몰래 미국 배에 올라 종을 훔쳐 와 몸값으로 내놓았습니다.

또 다른 일화는 몇 달 뒤, 제프리와 쿠퍼가 영국으로 휴가 갔을 때입니다. 주디가 외로웠는지, 정박 중이던 프랑스 포함 프랑시스 가르니에(Francis Garnier)의 개 폴과 눈이 맞았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승무원들은 둘을 위해 결혼식을 올려주고 3일간의 신혼여행을 HMS 그나트에서 보내게 했습니다. 그 결과 13마리 강아지가 태어났고 10마리가 생존했습니다. 부모를 닮아 많은 강아지가 여러 군함에 입대했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938년 10월 한커우에서 주디를 겨냥해 일본군 병사들이 소총을 겨누자, HMS 그나트 선원 둘과 난투극이 벌어져 일본 병사들이 강에 빠졌습니다. 일본이 공식 항의했고,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 주디는 다시 육지에 내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1939년 6월, 일부 승무원이 신참 포함 HMS 그래스호퍼(Grasshopper)로 옮겨가며 주디도 조지 화이트 준위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9월 독일 선전포고 후 싱가포르로 배치되었고, 1942년 2월 일본이 싱가포르를 공격하자 대공 방어와 철수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바타비아(자바)로 향하던 중 링가 제도 근처에서 일본군 공습을 받아 HMS 그래스호퍼가 화재로 침몰하고 자매함 HMS 드래곤플라이(Dragonfly)도 격침되었습니다.

승무원들은 보트로 인근 섬에 상륙했지만 주디가 보이지 않아 죽은 줄 알았습니다. 화이트가 좌초된 함정으로 돌아가 물자를 구하러 갔다가, 아래층 선실 캐비닛 밑에 갇혀 있던 주디를 구조했습니다.

무인도에서의 생존, 그리고 포로 생활

물자가 없는 섬에서 물 부족에 시달리던 중, 주디가 앞발로 땅을 파 샘물을 찾아냈습니다. 5일간 뱀들로부터 승무원들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현지 보트 통캉(tongkang)에 구조되어 싱켑 섬으로, 다시 정크선으로 수마트라로 이동했습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사와룬토 정글을 도보로 횡단해 파당에 도달하기까지 한 달 넘게 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디는 악어 습격을 받아 15cm 상처를 꿰매야 했고, 나중에 호랑이 출현을 경고하며 보답했습니다.

1942년 3월 18일 파당에 도착했지만 이미 일본 수중이었습니다. 전원이 포로가 되어 북수마트라 메단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주디는 빈 쌀자루 속에 숨어 함께 갈 수 있었습니다.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

영국 포로들이 겪은 참상과 같았습니다. 학대, 굶주림... 1인 하루 식량은 밥 한 컵. 공군 프랭크 윌리엄스 상병은 자기 몫을 주디와 나눠 먹었습니다. 주디는 구두 수선병 쿠젠스가 경비병 벨트 만들다 남은 가죽 조각을 얻어먹을 수 있어 그나마 나았습니다. 쿠젠스는 나중에 말라리아로 사망했습니다.

윌리엄스와 주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경비병들이 영국인을 때리자 주디가 격렬히 저항하다 총살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윌리엄스가 총구 앞에 나서며 막으려다 죽을 뻔했지만, 개를 좋아하던 수용소 소장이 개입해 해결했습니다. 소장은 주디를 정식 전쟁 포로 '글로르고어 메단 81a(Gloergoer Medan 81a)'로 등록했습니다. 그 대가로 강아지 한 마리를 갖기로 했죠.

나중에 5마리 강아지가 태어났습니다. 한 마리는 소장이 가져가고, 한 마리는 술 취한 경비병이 죽이고, 한 마리는 여성 수용소로, 한 마리는 적십자로, 마지막 한 마리만 주디 곁에 남았습니다.

주디는 경비병 접근을 알리고, 뱀과 전갈로부터 동료들을 지키며, 쥐나 작은 짐승을 잡아 식량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1944년 6월, 전황 악화로 포로들이 싱가포르로 이송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SS 반 바르위크(Van Warwuck), 개명 후 하루키쿠 마루(Harukiku Maru)에 탔는데, 선장이 동물을 싫어해 주디는 다시 자루 속에 숨어 가야 했습니다. 뙤약볕 아래 갑판에 빽빽이 갇힌 채 꼼짝 않고 버텨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어뢰 피격, 그리고 또 한 번의 기적

6월 26일, 영국 잠수함 HMS 트럭큘런트(Truculent)의 어뢰에 맞아 배가 침몰했습니다. 윌리엄스는 현창으로 바다에 뛰어들었고, 아수라장 속에서 주디의 생사를 알 수 없었습니다. 700명 중 500명이 익사했습니다. 일본군에 구조된 윌리엄스는 새 수용소에서 이상한 소문을 듣습니다. 난파 사고 때 개 한 마리가 부표를 물고 와 사람들에게 쥐여주고, 힘 빠진 이들을 수면으로 끌어올려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이야기. 그 개가 바로 주디였습니다.

주디는 살아남아 다시 포로들과 합류했습니다. 일본 대위가 총살하려던 순간, 강아지를 데려갔던 그 소장이 나타나 구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주디는 다시 포로 지위를 회복하고 윌리엄스와 감격의 재회를 했습니다. 한 달 뒤, '페칸바루 죽음의 철도(Pekanbaru Death Railway)' 건설을 위해 정글로 보내졌습니다. 다시 썩은 타피오카를 나눠 먹으며 버텨야 했습니다.

정글에서의 생존과 해방

윌리엄스는 이때 주디의 성격이 변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순종적이지만 온순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지혜를 갈고닦았다고요. 그래도 많은 영국인이 주디 덕에 살았습니다. 수풀 속 호랑이를 경고했고, 반대로 포로들은 주디가 현지인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일본군에게 총살당하지 않게 지켰습니다. 전염병 핑계로 희생시키려 할 땐 윌리엄스가 정글로 도망치게 해 살렸습니다.

3일 뒤 연합군 접근으로 일본군이 급히 철수했고, 두 명의 낙하산 병이 내려와 포로들에게 자유를 알렸습니다. 윌리엄스는 주디를 다시 숨겨 영국 리버풀로 향했습니다. 주디는 서리 주 해크브리지에서 6개월간 검역을 거쳐야 했고, 윌리엄스는 신문 광고로 모금해 비용을 마련했습니다. 이미 '포함 주디(Gunboat Judy)'란 별명으로 유명해져 있었죠.

영예와 말년

검역 후 런던으로 갔습니다. 윌리엄스는 훈장을, 주디는 디킨 메달(Dickin Medal), 동물계의 빅토리아 십자가를 받았습니다. 사진 판매로 기금 모금, BBC 라디오 출연, 전사한 동료 유족 방문 등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포츠머스에 정착했다가 1948년 윌리엄스가 탕가니카(현 탄자니아) 플랜테이션 일로 이주하며 주디도 동행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자손을 남겼습니다.

출산 후 유방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받았으나, 파상풍 감염으로 1950년 2월 17일 안락사되었습니다. 향년 거의 14세. 공군 전투복에 메달을 두르고 화강암과 대리석 무덤에 안장되었으며, 비석엔 그녀의 공적이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