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해양 확장은 유럽 전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인에게 항해란 세계 각지와 교역하기 위해 택한 길이었다.
글: 레안드루 카르발류(Leandro Carvalho)
유럽 최초의 대항해
포르투갈인은 15세기와 16세기의 대항해 시대에 바다로 나선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이 글에서는 포르투갈이 바다 정복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과 이유를 살펴본다.
포르투갈이 선구자가 된 네 가지 요인
1. 신흥 상업 부르주아지의 등장
포르투갈이 대항해에 나선 첫 번째 이유는 15세기 유럽 무역에서 포르투갈의 참여가 점차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가 등장하면서 이들은 세계 여러 지역과 교역하기 위해 항해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2. 왕권 중앙집권화와 최초의 통일 국가
포르투갈의 군주제 중앙집권화는 14세기 아비스 혁명(Avis Revolution)과 함께 이루어졌다. 포르투갈은 최초로 통일된 유럽 왕국으로 평가받으며, 곧 유럽 역사상 최초의 근대 국민국가였다. 국가의 통일 자체뿐 아니라 아비스 혁명은 상업 부르주아지의 힘을 공고히 했고, 앞서 언급했듯 이들은 대항해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다.
3. 우수한 항만 조건
15~16세기 포르투갈을 연구한 학자들, 즉 디에게스(Diegues, 2010), 텐가리냐(Tengarrinha, 2001), 실바(Silva, 1989)1는 당시 포르투갈에 있던 양질의 항만들이 포르투갈의 선구적 위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4. 사그레스 학교의 항해술 연구
포르투갈의 해양 사업을 뒷받침한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은 총명하고 통찰력 있는 항해왕자 엔히크 왕자(Infante D. Henrique, 1394~1460)가 주도한 사그레스 학교(Sagres School)의 항해술 연구였다. 사그레스 학교는 엔히크 왕자의 저택에서 자리 잡았으며, 천문학자·지도 제작자·상인·모험가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모이는 거점이 되었다.
해양 확장의 시작: 세우타 정복
바다를 건너 정복의 과정이 본격화되면서 포르투갈은 1415년 세우타(Ceuta)를 점령했는데, 이는 해양 확장 기간 유럽인의 첫 번째 정복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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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돌파와 신대륙 발견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달성하고자 했던 핵심 목표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항해하는 것, 즉 '아프리카 항로'의 개척이었다.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연안에 여러 거점과 특권을 확보했다. 1488년에는 포르투갈 항해사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가 희망봉에 도달하여 다른 대양으로 통하는 항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했다. 마침내 1498년에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에 도착했고, 1500년에는 또 다른 항해사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Pedro Álvares Cabral)이 동방 교역을 위해 대함대를 이끌고 출항했다가 소위 '신대륙'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게 된다.
유럽 최대의 상품 집산지로 성장
항해술 연구(사그레스 학교)의 발전과 더불어 포르투갈인은 뛰어난 상인으로 성장했고, 새로운 선박을 건조하며 탁월한 항해사들을 배출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에 물품을 보관하거나 재출항을 기다리는 물류 거점, 즉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 집산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 DIEGUES, Antonio Carlos Sant'Ana. Peoples and Seas: a retrospective of maritime socio-anthropology. São Paulo: CEMAR, Center for Maritime Cultures, University of São Paulo, 1993.
SILVA, Janice Theodoro da. Discoveries and Colonization. 2nd ed. São Paulo: Ed. Ática, 1989. Principles Series.
TENGARRINHA, José (org). History of Portugal. 2nd ed. Bauru, SP: EDUSC,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