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 유럽 경제 전쟁과 포르투갈 침공

프랑스와 영국의 패권 다툼

19세기 초, 산업화를 완수하고 경제력을 급속히 확장한 프랑스는 당시 세계 최고의 산업 강국이었던 영국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에 맞서기 위해 영국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와 동맹을 결성했다. 이들 국가 역시 자국 영토로 번져가던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저지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805년 10월, 나폴레옹은 해상에서 영국과 힘을 겨루어 보았으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는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육상 전선의 승리와 대륙 봉쇄령 선포

그러나 육상 전선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랐다. 트라팔가르 해전 약 한 달 반 후, 나폴레옹 군대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격파했으며, 이듬해인 1806년에는 예나 전투에서 프로이센마저 무찔렀다.

승기를 완전히 장악한 나폴레옹은 곧바로 '대륙 봉쇄령'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유럽 대륙의 모든 국가들은 영국과의 통상이 금지되었고, 영국 선박의 항구 입항도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해상 패권을 지닌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켜 굴복시키려는 나폴레옹의 대책이었다.

틸지트 조약과 러시아의 참여

1807년, 보나파르트는 또 한 번의 군사적·외교적 성공을 거두었다. 폴란드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한 그는 차르 알렉산드르 1세에게 틸지트 조약 체결을 강요했다. 이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영국에 대한 경제 봉쇄를 준수하고, 프랑스의 유럽 패권을 인정할 것을 약속했다.

양면 외교를 펼친 포르투갈

한편 포르투갈에서는 주앙 왕자(D. João) 정부가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대륙 봉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비밀리에는 계속해서 영국 상품의 항구 반입을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고 가난한 포르투갈 왕국이 여전히 영국과 통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폴레옹은 포르투갈 침공을 명령했다. 이러한 위협에 직면한 포르투갈 궁정은 결국 브라질로 천도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