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6·25 전쟁)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에서 남북한 두 정부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20세기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로 꼽히며, 약 25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전쟁은 남북한 사이의 분단을 한층 더 깊고 굳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전쟁의 배경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강요한 분단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냉전 체제 속에서 세계가 동서 진영으로 양분되면서 촉발된 긴장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한반도는 20세기 초부터 외세의 간섭 대상이었다. 특히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해 한반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고, 이로써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은 한반도 곳곳에 식민 통치 기구를 세워 지배를 강화했다. 일본은 한국인이 경작하던 비옥한 토지를 수탈했고, 많은 한국인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으며, 상당수를 일본으로 끌려가게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도 만연했다.
일제의 폭압적인 지배에 맞서 많은 한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연합국 측에 서서 항일 투쟁에 나섰다. 일본 침략자를 몰아내고 한반도의 독립을 보장받는 것이 한국인들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전승국들은 한반도에 대해 전혀 다른 계획을 숨기고 있었다.
1945년 7월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두 개의 점령 지대로 나누기로 합의했다. 38도선이 그 경계선이 되었고, 북부는 소련의 영향권에, 남부는 미국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남북한 간의 전쟁
한반도 분할에 따라 외세는 일정 기간 해당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자신들의 영향권에 맞춘 정부 수립을 주도했다. 그 결과 북한에는 김일성, 남한에는 이승만이 각각 정권을 잡았다.
양측 정부 모두 자신의 주도 아래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를 바랐다.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확보했고, 남한의 경우 정부는 공산주의와 연관된 모든 민중 운동을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북한에 대한 소련의 군정은 1948년에, 남한에 대한 미군의 군정은 1949년에 각각 종료되었다. 그러나 1948년 총선의 실패 이후 남북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고, 북한은 남침 준비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남침 의사를 밝힌 것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으로, 그는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통치 아래 통일하려 했다. 이를 위해 김일성은 요시프 스탈린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스탈린은 처음에는 남한에 대한 군사 행동이 미국과의 직접 충돌로 번질 것을 우려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거부하면 오히려 중국이 지역 내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는 점, 그리고 북한이 남침 작전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완료되어 미국이 반응할 겨를도 없으리라고 주장한 점 등이 스탈린을 설득하는 데 작용했다.
소련은 주로 물자와 무기를 통해 북한을 지원했다. 소련의 지원이 확정되자 북한은 남침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고, 마침내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도선의 국경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했다.
북한군의 남침 소식에 국제사회의 반응은 거의 즉각적이었다.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제83호를 채택해 한국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개입을 승인했다. 이 개입은 주로 미군이 주도했다.
전쟁의 국면
한국전쟁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국면(1950년 6월~9월)에는 북한군이 주도권을 쥐고 남한군을 '낙동강 방어선'이라 불리는 좁은 교두보 지역(부산 교두보)으로 몰아넣었다.
2국면(1950년 9월~10월)에는 남한군과 미군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미군의 개입은 부산 교두보 방어에 성공한 뒤 본격화되었으며,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면서 북한군은 대규모 후퇴를 강요당했다.
북한군의 후퇴에 힘입어 유엔군은 38도선을 넘어 북진했고, 북한군을 반도 북방으로 몰아붙였다. 패색이 짙어지자 중국이 군대를 파견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승리가 자국 영토 침공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개입을 결정한 것이다.
마지막 3국면, 즉 가장 길게 이어진 국면은 1950년 10월 중국군의 참전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의 개입으로 전세는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북한군은 유엔군을 38도선 인근까지 되밀어냈다. 이후 전쟁은 전선에 큰 변화 없이 소모전 형태로 계속되었다.
길어지는 전쟁, 늘어나는 사망자, 불투명한 전황 속에서 판문점에서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남북 어느 쪽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북한 관계는 여전히 매우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