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치즘(Nazism)이란? 히틀러와 제3제국의 탄생 배경과 핵심 특징

나치즘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이끈 정치 운동으로, 1920년대 독일에서 발전한 이념입니다. 인종주의, 반유대주의(안티셰미티즘), 우생학을 핵심적 특징으로 하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인류史上 가장 비참한 참극을 낳았습니다.

‘나치즘’이라는 표현은 ‘나치(Nazi)’라는 약칭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1920년대 아돌프 히틀러가 조직한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을 줄여 부른 이름입니다. 나치즘의 본질적인 특징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이 성장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치즘의 탄생 배경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국이 된 독일은 승전국들에게 굴욕적인 처우와 갖가지 요구를 받아야 했습니다. 전쟁 패배의 굴욕과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전쟁 후유증은 독일 민중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종전 직후의 분위기는 독일인들이 다른 나라들에 대해 품게 된 거대한 원망과 분노로 이어졌고, 19세기 후반부터 뿌리내리고 있던 극단적인 내셔널리즘(국수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 재편은 바이마르 공화정(Weimar Republic)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름은 국가에 새로운 정치적 방향을 제시한 헌법이 만들어진 도시인 바이마르에서 따온 것입니다. 나치즘은 바이마르 공화정 체제 안에서, 새로 수립된 정권에 맞서 활동하던 여러 정당과 준군사 조직, 파벌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갔습니다. 그중에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끌었던 공산주의 계열의 스파르타쿠스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바이마르 공화정은 1924년부터 1929년까지 외국 자본, 특히 미국의 투자에 힘입어 나름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발 대공황, 즉 1929년 뉴욕 증권거래소의 폭락이 일어나면서 독일 경제는 최대 투자국과 함께 함께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경제 침체 상황은 나치의 급진적 주장이 대중의 지지를 얻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누구인가?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아돌프 히틀러는 살국동맹(동유럽 동맹) 측 전투 병사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히틀러는 참전 용사들, 노동자, 독일 중산층 인사들로 구성된 집단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 집단은 독일의 정치적 명예를 회복하고, 과거 두 개의 위대한 제국이 누렸던 영광스러운 독일의 과거를 되살린다는 목표를 가진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습니다. 이 집단이 창당한 것이 나치당이었고, 이후 나치당은 히틀러가 말한 '제3제국(Drittes Reich)' 건설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29년 경제 대붕괴 이전부터 히틀러와 동료들은 권력 장악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1923년 나치들은 바이에른주에서 쿠데타(맥주홀 폭동)를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힐러는 옥중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다듬었고, 그것을 『나의 투쟁(Mein Kampf)』이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나치당이 추진할 프로그램의 전체 청사진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었습니다.

나치당을 통해 히틀러는 점진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에 의원들을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대통령 폰 힌덴부르크 다음가는 국가의 제2인자인 수상(총리) 자리에까지 올라섭니다.

1933년, 독일 국회의사당이 방화 사건(공산당의 소행으로 몰림)으로 불탄 뒤, 히틀러와 나치들은 대통령 힌덴부르크에게 더 큰 권한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해부터 나치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1934년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는 수상과 대통령의 직위, 그리고 모든 독일인의 '퓌러(Führer)', 즉 지도자라는 칭호를 한 몸에 합쳤습니다. 나치 정권은 완전한 전체주의 체제로 변모했습니다.

나치즘의 주요 특징

권력을 장악한 이후 나치즘의 주요 특징은 대부분 히틀러가 옥중에서 발전시킨 사상에서 파생된 것들이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도구가 선전(프로파간다)을 통한 국민 통제였습니다. 라디오와 영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나치 사상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역시 그 핵심 사상 중 하나였습니다. 히틀러는 독일이 당면한 각종 문제, 특히 경제 문제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렸고, 이에 대한 증오는 나치 통치기에 극에 달했습니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홀로코스트, 즉 강제수용소에서 600만 명 이상(대다수가 유대인)이 학살된 비극으로 치닫게 됩니다.

반유대주의와 결부된 또 하나의 특징은 '백인 게르만 남성, 즉 아리아인 종족의 우월성'이라는 인종주의적·우생학적 관념이었습니다. 나치는 이 '우월한 종족'이 세계 제국을 건설할 '생존 공간(레벤스라움)'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생존 공간은 유럽 대륙의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히틀러의 계획에 따르면 게르만 종족이 그 우월성 때문에 다른 민족들의 '지배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명분으로 침공과 정복의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히틀러의 사상은 독일 국민 상당수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도자야말로 번영하고 승리하는 독일을 보장할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치즘의 이러한 특징은 결국 독일을 이전 전쟁보다 훨씬 피비린내 나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그리고 수용소에서 확인된 '죽음의 산업'이라는 끔찍한 참사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Elzbieta Sekows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