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20세기에 등장한 개념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논쟁적인 개념 중 하나로, 경제 이론과 정치·경제적 실천 양면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복잡한 개념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 개념은 전후(戰後) 두 대표적인 경제학파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바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상징하는 시카고 학파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가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학파입니다. 둘째,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여러 나라에서 시행된 정치·경제 정책을 규정하는 용어로도 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정치·이념 스펙트럼의 좌우 양측 분석가들 모두에 의해 활용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인 영국의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부터 자유주의 전통에 더 가까웠던 브라질의 호세 길레르메 메르키오르(José Guilherme Merquior)까지, 서로 다른 입장의 학자들이 모두 이 용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맥락을 살펴봐야 할까요? 전후 정치·경제 논쟁의 배경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전후 질서와 몽페를랭 협회의 탄생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서유럽, 특히 영국에서 지배적인 정치·경제 모델은 사회민주주의였습니다. 이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고 자원을 관리하여 보건, 교육, 주거 등의 분야에서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 위에 세워진 복지국가(Welfare State) 체제로 이어졌습니다.
동시에 노동조합들도 경제 운영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자 서방의 지배적 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국가 개입주의 노선이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 Keynes)의 이론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의 뉴딜(New Deal) 정책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국가 개입주의에 맞서, 세계 각지의 지식인들—대부분 경제학자나 사회학자—은 18~19세기에 유행했던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밀턴 프리드먼, 베르트랑 드 주브넬(Bertrand de Jouvenel), 칼 포퍼(Karl Popper),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47년 4월 1일, 하이에크의 주도 하에 이 지식인들은 스위스에 모여 몽페를랭 회의를 개최했고, 이 회의를 통해 자유주의 사상과 시장경제의 역학을 연구하는 모임인 몽페를랭 협회(Mont Pèlerin Society)가 탄생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하이에크와 프리드먼(두 사람 모두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은 큰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와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국가 개입주의와 복지국가를 옹호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거센 비판에 부딪혔고, 바로 이 비판자들이 만들어낸 언론적 반향 속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별칭이 탄생하게 됩니다.
'좌파'와 '우파'의 신자유주의 비판
일반적으로 좌파 진영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다음과 같은 경제 정책 측면에 집중됩니다. 공기업의 민영화(Privatization) 추진,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노동 및 노조 관련 법령 개정,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와 같은 긴축 재정 조치 등이 대표적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자유주의'로 분류되는 정부들조차 이런 정책들을 항상 '순수한' 형태로 시행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공기업 민영화의 선구자였던 페르난도 콜로르 드 멜루(Fernando Collor de Mello)는 동시에 브라질 역사상 가장 심각한 국가 개입 행위 중 하나인 예금 동결(구금융자산 압수)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20세기 후반 자유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이 개념이 지닌 경멸적인 뉘앙스 때문이며, 둘째, 당시 자유주의 전통의 다양한 분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 학파의 계보를 잇는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레몽 아론(Raymond Aron)과 어니스트 겔너(Ernest Gellner)의 사회학적 자유주의, 마이클 오크숏(Michael Oakeshott)의 보수적 자유주의 등 다양한 흐름이 존재했음에도, '신자유주의'라는 단일한 꼬리표로 묶어버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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