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캄보디아의 폭군 폴 포트(Pol Pot), 크메르 루주와 대량학살의 시대

폴 포트는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 루주(Khmer Rouge)'를 오랜 기간 이끈 지도자입니다. 그는 1975년 권력을 장악한 뒤 극단적인 독재 통치를 강요했고, 그 결과 최소 150만 명에 달하는 캄보디아 국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폴 포트의 통치가 남긴 비극은 오늘날 '캄보디아 대량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폭군 폴 포트(Pol Pot), 크메르 루주와 대량학살의 시대

폴 포트의 젊은 시절

폴 포트는 본명 살로스 사르(Saloth Sar)로, 1925년 5월 19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오늘날의 캄보디아 지역)에 있는 프렉 스바우크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캄보디아 대다수 국민과 달리 그의 가족은 생활 여건이 매우 좋은 편이었는데, 이는 왕실과의 인연 덕분이었으며, 부모는 넓은 벼농사 농장을 소유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폴 포트에게는 수도 프놈펜에 살던 두 형제가 있었고, 그들의 영향 아래 그는 1934년 공부하기 위해 프놈펜으로 이주했습니다. 처음에는 불교 사찰에서 배움을 시작했고, 이후 프랑스가 설립한 가톨릭 계열 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왕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폴 포트는 파리에서 무선 전자공학을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도 받게 됩니다.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폴 포트는 친구들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연구 모임과 접촉하게 되었고, 특히 세르클 마르크시스트(Cercle Marxiste), 즉 프랑스에 있던 캄보디아 공산주의자들의 비밀 결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는 파리에서 학업을 끝마치지 못했는데, 시험에 낙제하면서 장학금을 잃고 결국 귀국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953년 캄보디아로 돌아온 폴 포트는 베트남인들이 주도하던 공산 혁명 조직 크메르 비엣민(Khmer Viet Minh)에 가입했습니다. 이 조직은 프랑스 식민지배의 종식을 주장하며 인도차이나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크메르 루주 가입과 권력 행보

크메르 비엣민이 해체된 직후, 폴 포트는 같은 공산주의 성향의 캄푸치아 인민혁명당(훗날의 크메르 루주)에 합류했습니다. 이후 그는 수도 프놈펜에서 프랑스 역사와 문학 교사로 일하며 표면적인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60년부터 폴 포트는 총리 노로돔 시아누크가 이전 지도부에 대한 탄압을 진행하면서 당의 실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몇 년 뒤인 1966년에는 당명을 캄푸치아 공산당으로 변경했는데, '캄푸치아'는 캄보디아를 가리키는 또 다른 호칭이었습니다.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가 된 폴 포트는 정부의 추적을 피해 캄보디아 내륙으로 숨어들었고, 그곳에서 정부 전복을 목표로 하는 게릴라 조직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반정부 봉기를 준비하기 위해 베트남과 중국의 지원을 요청하며 외교적 발판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1968년, 폴 포트는 베트남과 중국의 도움 없이 노로돔 시아누크 정부와의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러다 1970년, 중국 방문 중이던 시아누크를 틈타 롱 놀(Lon Nol)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무너뜨립니다. 쿠데타 이후 시아누크는 중국으로 망명했고, 그는 자신을 축출한 롱 놀에 맞서기 위해 오히려 크메르 루주를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왕세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크메르 루주의 세력은 급성장했고, 캄보디아 곳곳에서 내전이 격화되었습니다.

집권과 캄보디아 대량학살

긴 내전 끝에 크메르 루주는 1975년 4월 17일 드디어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킵니다. 수도를 손에 넣은 폴 포트는 즉시 권력을 장악했고, 이후 수년간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참혹한 폭정을 펼쳤습니다.

폴 포트 정부는 프놈펜 시민 전체에게 도시를 떠날 것을 강요했으며, 다른 캄보디아 도시들에 대해서도 대규모 강제 이주를 단행했습니다. 이렇게 쫓겨난 사람들은 집단농장(collective farms)으로 보내졌습니다. 아울러 새 정책에 반대하거나 따르지 않는 모든 이들에 대한 철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이 시기에는 소수 민족들도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폴 포트 정부가 만든 집단농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 강제 노동에 내몰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굶주림으로 사망했고, 어떤 이들은 과로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정부 요원들의 고문 끝에 목숨을 잃았습니다. 결국 폴 포트가 권력을 쥔 4년 동안 그의 정권은 캄보디아 전역에서 최소 150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습니다.

실각과 최후

폴 포트의 통치는 4년 만에 끝을 맞이합니다. 1979년, 캄보디아 지도자가 캄보디아-베트남 국경 지대에서 수많은 베트남인들을 학살하자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것입니다. 침공 이후 폴 포트는 도피하여 태국 인근의 외진 지역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는 이후 여러 해 동안 이 지역에서 저항 세력을 이끌다가 1985년 크메르 루주의 지도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 깊은 산속에서 공산 게릴라들과 함께 은둔 생활을 하다가, 1998년 4월 15일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이미지 출처: Wdeon,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