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 뉘른베르크에 특별한 법정이 열렸습니다. 그 목적은 나치가 전쟁 중 자행한 만행을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뉘른베르크 재판소는 총 199명의 남성을 재판했으며, 이 중 21명은 나치 지도부의 핵심 인물들이었습니다. 기소된 혐의는 국제법 위반부터 의도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죄까지 다양했습니다.
4개국 합의로 탄생한 국제 재판
이 재판소는 1945년 구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의 대표자들이 런던에서 서명한 협약을 통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른바 '런던 헌장'으로 알려진 이 협정은 연합국이 처음으로 공동으로 국제 전범 재판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재판 결과는 오늘날 국제형사법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원칙들을 낳았습니다.
히틀러의 오른팔, 괴링의 최후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 중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이 있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괴링의 변호인측은 전통 형사법의 원리에 근거해 '죄형법정주의(법적 절차 없는 처벌 불가)' 원칙에 대한 위반을 주장하며 반박했습니다. 당시 적용된 혐의들은 재판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법률을 소급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괴링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처형이 집행되기 직전, 감옥에서 시안화 칼슘 캡슐을 삼켜 스스로 목숨을 끝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남긴 유산
뉘른베르크 재판은 단순히 개인의 죄를 가린 것을 넘어,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평화에 대한 죄'라는 새로운 국제법적 개념을 확립했습니다. 이후 모든 국제 전범 재판의 규범이 된 '뉘른베르크 원칙'은 국가 권력을 행사했더라도 개인은 국제법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