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44년 비테브스크 전투: 독일 제299보병사단의 궤멸

1944년 비테브스크 전투: 독일 제299보병사단의 궤멸

소련 제63소총사단은 제5군의 주력 부대 중 하나로, 군 전체 전선의 최우익을 담당하는 부대였다. 이 사단은 3개 소총연대와 1개 포병연대를 기본 편제로 두고 있었으며, 여기에 강습포 대대가 증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격 개시 전에 사단은 놀랄 만큼 화력이 보강되었다. 강습포 연대 1개, 대전차자주포 연대 1개, 경포병연대 1개, 다련장 로켓포(카츄샤) 연대 1개, 그리고 중유탄포 연대 2개까지 추가로 배속받은 것이다.

바그라티온 작전의 개시

벨로루시에서 벌어진 소련군 대공세, 이른바 '바그라티온 작전'의 초기 단계에서 제63소총사단은 겨우 3.3km에 불과한 좁은 정면에서 공격을 개시하도록 지정되었다. 마주한 적은 독일 제6군단 예하 제299보병사단으로, 사단장은 한스 융(Hans Jung) 중장이었다.

독일 사단은 방어 진지를 치밀하게 구축해 두었다. 3개 연대 가운데 2개 연대(각 2개 대대 규모)를 제1선에 배치하고, 나머지 1개 연대는 예비대로 운용하는 전형적인 견고한 방어 배치였다.

반면 소련 제63소총사단의 라스킨(Laskin) 소장은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보유한 3개 연대 전부를 제1선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우익 방면에 2개 연대, 좌익 방면에 1개 연대를 배치하는 과감한 일점돌파형 전술이었다.

화력 운용 역시 절제된 계산이 돋보였다. 라스킨 소장은 강습포와 대전차자주포의 3분의 2를 예비대로 남겨두고, 나머지 3분의 1만 보병의 직접 지원에 할당했다. 이윽고 25분간의 집중 포격이 끝나자, 제63소총사단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단 하루 만에 무너진 방어선

독일군 수비대가 반응할 새도 없이 첫 번째 진지는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오후가 되기 전에 제63소총사단은 독일군의 모든 거점을 점령했고, 독일 진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강 위의 다리마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점까지 제63소총사단은 두 개의 하천 장애물을 돌파했고, 독일군 5개 대대를 분쇄했으며, 독일군의 중포 다수를 노획했다. 결국 독일 제299보병사단은 사실상 조직으로서 존재 자체가 소멸하고 말았다. 독일 제6군단 방어선의 중앙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구멍이 뚫렸고, 비테브스크 포위망으로 이어지는 길이 이제 남쪽 방향에서도 활짝 열린 것이다.

폭 20km의 간극, 그리고 고립

같은 시각 비테브스크 남쪽에서는 제299보병사단의 궤멸 이후 제197보병사단이 소련군 공격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이 사단 역시 전선이 돌파당해 잔존 병력은 뒤로 밀려났다.

결국 히틀러의 고집불통과 중부집단군 사령관 부슈(Busch) 원수의 맹종적인 태도 때문에, 비테브스크에 참호 진지를 구축한 채 버티던 제53군단(LIII군단)과 제6군단 잔존 병력 사이에는 폭 20km가 넘는 거대한 관통 지대가 열리고 말았다. 이 간극은 곧 비테브스크에 고립된 제53군단 전체가 포위당하는 참극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