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포트스탠리 함락 – 포클랜드 전쟁의 종막

포트스탠리 함락 – 포클랜드 전쟁의 종막

1982년 5월 28일 아침, 포트 다윈에서 특수부대 코만도들이 헬기로 적진에 투입되어 적의 동향을 살피며 첫 접촉이 이루어졌다. 낮이 되자 이 선발대는 제2공수대대의 주력 병력과 합류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공수부대 한 개 대대가 아르헨티나군이 방어하던 진지를 향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포트 다윈의 첫 교전

참호를 깊이 파고 버티던 아르헨티나군은 14시간 동안 저항했지만 결국 항복했다. 상대는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더 노련했고, 근해의 왕립해군 함포 사격 지원까지 받고 있었다. 이 첫 전투의 결과는 뼈아팠다. 영국군은 25명이 전사했는데, 그중에는 제2공수대대 600명을 지휘하던 허버트 존스(Herbert Jones) 중령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부대 맨 앞에서 기관총에 쓰러졌다. 아르헨티나 쪽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1,400명이 포로로 잡힌 것 외에도 200명이 넘는 병사가 전투 중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증원 도착과 진격 재개

승리 다음 날, 영국 공수부대는 포트 다윈과 구스 그린을 포트 산 카를로스 교두보에서 온 증원부대에 인계한 뒤 포트 스탠리를 향한 행군을 재개했다. 북쪽에서는 왕립해병대 부대가 섬을 가로지르는 능선 기슭을 따라 동쪽으로 진격하며, 아르헨티나 순찰대와 더글러스·틸 인렛(Teal Inlet)의 초소를 손쉽게 몰아냈다.

진격 도중 돌격부대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호(Queen Elizabeth II)에 탑승해 온 제5보병여단 3,500명이 포트 산 카를로스에 상륙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스코츠 가즈 연대, 웨일스 가즈 연대, 그리고 용맹으로 유명한 구르카 부대로 구성된 이 부대의 도착으로 영국 원정군 병력은 8,500명으로 불어났다. 같은 시기, 런던에서 직접 파견된 제레미 무어(Jeremy Moore) 소장이 도착해 작전의 최종 단계인 포트 스탠리 전투의 지휘를 맡았다.

블러프 코브의 참극

6월 초, 영국군 북부 축의 선두 부대는 수도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포트 스탠리를 내려다보는 고지인 켄트산(Mount Kent)을 큰 저항 없이 확보했다. 반면 남쪽에서는 제5보병여단을 지휘하는 윌슨(Wilson) 준장이 아르헨티나 공군의 공습에 시달렸다. 작은 마을 피츠로이(Fitzroy)가 자리한 블러프 코브에서 6월 8일 새벽, 아르헨티나 스카이호크(Skyhawk) 전투기들이 포트 산 카를로스에서 해상 수송 중이던 신병들의 상륙 작전을 기습했다.

대공 방어망이 없었던 영국군은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해, 상륙정에 빽빽히 실려 있던 700명 가운데 60명이 넘는 병사를 잃었다. 이는 개전 이래 최대의 손실이었다. 런던이 크게 안타까워한 좌절이었지만, 래피어(Rapier) 미사일 포대의 호위를 받으며 새로운 증원부대가 도착하면서 공세는 계속되었다.

고지 전투와 포위망

이후 며칠간 영국군의 진격은 한층 수월해졌는데, 아르헨티나군이 포트 스탠리 주변에 참호를 구축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전초기지들과 몇 차례 소규모 교전을 벌친 뒤, 북쪽과 남쪽에서 진격해 온 두 개의 영국 공격 집단은 포트 스탠리 바로 교외에서 합류했고, 하리엣산(Mount Harriet), 월산(Mount Wall), 투 시스터즈산(Two Sisters) 등 도시를 둘러싼 고지들을 차례로 점령했다. 이 고지들에서 영국 포병은 아래에 있는 아르헨티나 진지에 포격을 퍼부었다.

6월 12일에는 악천후에 힘입은 영국군의 압박이 잠시 주춤했지만, 헬기 탑승 코만도들이 최종 목표에서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텀블다운산(Mount Tumbledown)을 확보했다. 무어 장군이 지나치게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피하고자 메네데스(Menendez) 장군과 접촉하는 동안, 양측 포병은 수백 발의 포탄과 로켓탄을 서로에게 쏟아부었다.

항복 협상과 도시 입성

다음 날인 6월 13일 일요일은 최종 공격을 앞둔 기다림 속에 지나갔다. 전쟁을 끝내고 싶어 안달하는 영국군과, 초기의 전의가 패배주의로 바뀌어 공포에 떠는 아르헨티나군의 심경이 대비됐다. 진동하는 포성 속에서 아르헨티나 군목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였고, 전초기지에서는 영국 돌격조들이 적의 방어선을 시험해 보았다. 오후부터 포트 스탠리 서쪽 출구에 배치된 아르헨티나 제1방어선이 무질서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승부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메네데스 장군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급 지휘부와 합의하여 학살을 피하기 위해 이미 8,000명 부대의 항복을 협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측이 수주에 걸쳐 준비해 온 포트 스탠리 전투는 결국 치러지지 않았다. 포클랜드 수도의 문 앞에 진을 친 영국군은 6월 14일 이른 아침, 얼어붙는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도시에 입성했다. 아르헨티나 진영은 완전한 붕괴 상태였다. 멍하니 굳어버린 병사들의 긴 행렬이, 어쩔 줄 모르는 장교들의 시선 아래 거리를 배회했다. 그들은 송환을 기다리며 도시에서 떨어진 활주로에 집결하게 될 것이었다.

오전이 끝나기 전, 공공 건물 위의 파란색과 흰색 아르헨티나 국기는 영국 국기로 교체되었고, 무어 장군은 화이트홀에 급보를 보냈다. "임무 완수. 영국의 질서가 포트 스탠리를 지배합니다. God Save the Queen — 신께서 여왕을 보우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