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와 카르타고를 사로잡은 불안: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운명의 대결

전장만 바뀌었을 뿐, 위험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희망과 불안은 날이 갈수록 더욱 격해져 갔다. 한니발이 16년 만에 이탈리아를 떠나면서 로마 시민에게 그 땅을 평화롭게 돌려준 것에 기뻐해야 하는지, 아니면 단 한 명의 병력 손실도 없이 아프리카로 건너간 사실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장만 바뀌었을 뿐, 위험 자체는 여전히 같았다.

파비우스의 예언, 그리고 한니발이라는 존재

그 처참했던 전쟁의 신탁자였던 퀸투스 파비우스는 방금 세상을 떠났지만, 한니발이 이국 땅에서보다 고향에서 더 무서운 적이 될 것이라던 그의 예언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스키피오는 이제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적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군대의 하인이던 스타토리우스를 지휘관으로 내세운 미개하고 조잡한 왕 시팍스, 시팍스의 장인이자 가장 비겁한 장군인 하스드루발, 그리고 무장이 허술한 농민들을 급히 짜모은 임시변통의 부대들 말이다.

그러나 이제 스키피오 앞에 선 것은 다름 아닌 한니발이었다. 저명한 장군 함밀카르의 진영에서 태어났다 해도 좋을 한니발은 배우는 대로 무기를 익혔고, 어린 시절부터 병사였으며, 거의 소년기에 가까운 나이에 장군이 되어 승리의 품 안에서 늙어갔다. 그는 알프스산맥에서 해협에 이르기까지 에스파냐, 갈리아, 이탈리아를 자신의 위업을 기리는 기념비로 가득 채운 인물이었다.

로마의 피로 단련된 한니발의 정예군단

그의 지휘 아래에는 장군 자신만큼 많은 원정을 함께해 온 군대가 있었다. 온갖 고난을 견디는 데 익숙해진 이 군대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릴 정도였다. 이들은 수천 번 로마인의 피로 자신을 물들이고, 평범한 병사의 전리품은 물론 장군급의 전리품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스키피오가 전장에서 마주할 적들 중에는 스스로의 손으로 로마의 법무관, 장군, 집정관을 죽인 자들이 있었다. 성벽관(城壁冠)과 참호관(塹壕冠)을 받을 만큼 무공을 세운 자들이었고, 자신들의 무력으로 함락한 로마 진영과 로마 도시들을 누비며 다녔던 자들이었다. 오늘날 로마의 고위 관리들이 가진 파스케스(權威의 상징)의 수가, 한니발이 전사한 장군들에게서 빼앗아 자신 앞에 내놓을 수 있는 파스케스보다 많지 않았다.

최후의 결전을 앞둔 로마인들의 불안

이러한 경각심으로 마음이 동요된 그들은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만 가는 것을 느꼈다. 몇 년 동안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끝이 다가올 희망 없이 전쟁이 길어지는 것을 지켜봐 온 그들에게, 한니발과 스키피오라는 두 라이벌이 마치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전투를 위해 서로를 내던지듯 맞서는 광경은 강렬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키피오에 대한 신뢰에 어떤 한계도 두지 않았고 승리를 확신했던 사람들조차, 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점점 커지는 불안을 느꼈다.

카르타고인들의 엇갈린 마음

같은 우려는 카르타고인들 사이에서도 드러났다. 때로는 자신들의 한니발과 그 위대한 업적의 영광을 떠올리며 평화를 청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아 정규전에서 두 번이나 패배했고, 시팍스는 포로가 되었으며, 에스파냐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축출되었고, 이 모든 재앙이 한 사람, 즉 용감하고 현명한 스키피오의 손에서 나온 것을 기억하자, 한니발은 더 이상 그들에게 구원자가 아니라 그들을 멸망시키기로 예정된 장군일 뿐이었고, 그들은 그를 저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