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육상 군사 작전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제3제국 몰락의 서막도 함께 열렸습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상대를 앞두고 독일 국방군은 그동안 놀라운 성과를 거둬온 기습 전술, 이른바 '전격전(Blitzkrieg)'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3개 군집단의 배치와 압도적 전력
독일 공군은 개전 초기 붉은 군대 공군과 소련군의 주요 시설 및 집결지에 결정타를 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독일군은 소련군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해 비교적 수월하게 격파해 나갔습니다.
독일군과 동맹군은 세 개의 군집단(Heeresgruppe)으로 나뉘어 배치되었습니다. 북쪽에서는 폰 레프(von Leeb)가 지휘하는 북부 집단군이 제16군, 제18군, 그리고 제4기갑집단을 이끌며 총 29개 사단과 570대의 전차를 보유했습니다.
그보다 남쪽에는 폰 보크(von Bock)가 지휘하는 중부 집단군이 배치되었습니다. 두 개의 야전군(제4군, 제9군)과 두 개의 기갑집단, 즉 호트(Hoth)가 지휘하는 제3기갑집단과 구데리안(Guderian)이 지휘하는 제2기갑집단에 49개 사단이 통합된 부대였으며, 무려 1,770대의 전차를 운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부 집단군은 폰 룬슈테트(von Rundstedt)의 지휘 아래 두 개의 야전군(제17군, 제11군)과 폰 클라이스트(von Kleist)가 이끄는 제1기갑집단 등 42개 사단과 750대의 전차로 구성되었습니다.
육군 최고사령부 예비대까지 합치면, 독일군은 소련 침공에 각종 부대를 합쳐 총 139개 사단과 3,090대의 전차를 투입했습니다. 여기에 루마니아 제3·제4군(12개 보병사단, 4개 기병여단, 5개 산악여단), 이탈리아 군단(2개 기계화보병사단과 1개 신속사단 '첼레레'), 헝가리 군단(2개 기계화보병여단과 1개 기병여단), 슬로바키아 군단(2개 보병사단과 1개 기계화보병여단)이 동참했습니다.
더 북쪽에서는 핀란드군도 16개 보병사단, 1개 기병여단, 2개 산악보병여단을 갖추고 대소 전쟁에 참전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또한 독일군에는 스페인 의용병으로 구성된 유명한 '푸른 사단(Blue Division)'도 있었습니다. 이 부대는 무장친위대(Waffen-SS)가 아닌 정규 육군 소속으로, 정식 전투 서열에 편입되어 제250보병사단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습니다.
초기의 승리, 그리고 '겨울 장군'의 반격
개전 초반 독일군의 공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붉은 군대 공군은 압도적인 물량 우위에도 불구하고 분산되어 있었고, 그 결과 공중의 지배권은 독일 공군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제공권 확보는 지상 작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군은 방해받지 않고 기존의 표준 전술을 구사하며 소련 국경군을 포위 섬멸했습니다.
1941년 12월까지 소련군은 무려 300만 명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독일군의 진격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포위당한 소련군은 단순히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맹렬한 투지로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군은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오자 상황이 반전되었습니다. 러시아 군대의 오랜 동맹인 '겨울 장군'이 국방군을 특히 가혹하게 응징했습니다. 혹한과 붉은 군대의 완벽한 협공 앞에서 독일군은 모스크바 성문 앞에서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독일군의 첫 번째 실패였습니다.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 전세의 역전
1941~42년 겨울 소련군의 반격을 격퇴한 독일군은 다시 공세에 나섰고, 새로운 포위전에서 새로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스탈린그라드라는 대참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때까지 무적이라 일컬어지던 독일군은 지도부의 실책과 적의 압도적 물량 우위라는 무게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후 독일군은 패색이 짙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같은 용기, 같은 방법, 같은 직무에 대한 헌신으로 싸우며 때로는 전술적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적의 우위에 정면으로 도전할 힘은 남지 않았습니다. 1943년 여름 쿠르스크 전투의 패배는 전쟁의 귀결을 봉인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독일군의 공세는 처음으로 소련군에 의해 격퇴되었습니다. 육군과 무장친위대의 정예 사단들이 총동원되었지만, 일곱 겹의 방어선을 구축한 소련군은 끝까지 버텨냈고 결국 기갑부대는 후퇴했습니다. 게다가 붉은 군대 공군은 이미 독일 공군의 제공권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패배로 치닫는 2년간의 후퇴
쿠르스크 전투 이후 독일군은 사실상 방어전을 벌였습니다. 이후 2년 동안 독일군은 소련군의 질식할 듯한 압박 속에 자신들의 전술 교리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물론 소극적인 방어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병력과 물자에서 적이 누린 우위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아무리 잘 싸워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희망마저 히틀러의 무모한 지휘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