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시라쿠사 함락: 마르켈루스가 내린 약탈 명령

아크라디네의 성문과 성벽은 주로 배신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항복하더라도 용서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처지였던 이들은 누구도 성벽에 접근하거나 회담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협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마르켈루스는 병력을 에우리알로스 요새 쪽으로 돌렸다.

에우리알로스 요새 공략 시도

에우리알로스는 해안에서 가장 먼 도시 끝자락의 언덕 위에 자리한 요새로, 시골과 섬 내륙으로 통하는 길을 굽어볼 뿐 아니라 물자 수송선단을 받아들이기에도 매우 유리한 위치였다. 에피키데스는 이곳의 방어를 아르고스 출신 필로데모스에게 맡겼다. 마르켈루스는 참주 살해에 가담했던 인물인 소시스를 그에게 보냈다. 소시스는 오랜 협상 끝에 아무런 결실 없이 돌아와, 상대가 숙고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고했다.

필로데모스는 날짜를 거듭 미루며 히포크라테스와 힐미르코가 진영과 군단을 가까이 끌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적을 성채 안으로 들이면 성벽 사이에 갇힌 로마군을 손쉽게 섬멸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약탈을 우려해 정한 진영 위치

마르켈루스는 협상으로도 무력으로도 에우리알로스를 함락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네아폴리스와 티카(각각 한 도시에 버금갈 만큼 넓은 시라쿠사의 두 지구) 사이에 진을 쳤다. 더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들어가면 약탈에 눈이 먼 병사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네아폴리스와 티카의 사절들이 붕대와 올리브 가지를 들고 찾아와 학살과 불길로부터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다.

마르켈루스는 그들의 조건보다 탄원을 더 깊이 저울질한 끝에, 평의회의 만장일치에 따라 자유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폭력도 가하지 말 것을 포고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병사들의 재량에 맡기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진영을 성벽 구실을 하는 집들에 기대어 배치하고, 광장으로 열리는 문마다 초소와 파수병을 세워 부대가 흩어지는 사이 기습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비했다.

도시를 휩쓴 약탈

정해진 신호와 함께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집들의 문을 부수고 도시 곳곳에 공포와 소란을 퍼뜨렸다. 다만 주민들의 목숨은 살려두었다. 오랜 번영이 시라쿠사에 쌓아 온 모든 부가 약탈당할 때까지, 약탈은 멈추지 않았다.

한편 더 이상 원조를 기대할 길이 없어진 필로데모스는 에피키데스와의 안전한 접촉을 확보한 뒤 요새를 비우고 로마군에 넘겼다.

폭풍우를 틈탄 보밀카르의 탈출

도시 함락으로 모든 시선이 쏠려 있는 동안, 보밀카르는 밤에 폭풍을 틈타—로마 함대가 해상에 정밁해 있을 수 없었던 덕분에—배 35척과 함께 시라쿠사 항구를 빠져나왔다. 배 55척은 에피키데스와 시라쿠사인들에게 남겨두고 카르타고로 항해해 시라쿠사가 처한 극도의 위험을 알렸으며, 며칠 뒤에는 에피키데스가 히에론의 국고에서 인출한 상당한 자금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배 100척을 이끌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