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군의 시라쿠사 입성 – 마르켈루스의 눈물과 함락의 새벽

로마군, 시라쿠사에 입성하다

기원전 212년, 제2차 포에니 전쟁 한가운데 있던 시라쿠사는 로마 집정관 마르켈루스의 장기 포위 공격 끝에 마침내 성문이 열리는 운명을 맞이한다. 아래는 그 함락의 밤과 새벽을 생생하게 전하는 기록이다.

술에 취한 경비병, 무너진 성벽

천 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는 이미 성벽의 일부를 장악한 상태였다. 이윽고 나머지 부대가 합류하면서 로마군은 더 많은 사다리를 세워 성벽을 연달아 넘었다. 최초의 공격대가 도착한 헥사필레(Hexapyle)에서 신호가 전해졌지만, 그곳은 깊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망루 위에서 방탕한 밤을 보낸 대부분의 경비병들은 포도주에 취해 졸고 있었거나 만취 상태였고, 소수의 병사는 잠결에 기습을 당해 침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헥사필레 근처에는 작은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로마군은 이를 거칠게 부수기 시작했다.

기습에서 총공격으로

바로 그때 성벽 위에서 나팔이 울리며 미리 약속된 신호가 퍼져나갔다. 이제 사방에서 벌어진 것은 은밀한 기습이 아니라 노골적인 무력 공격이었다. 병력이 가장 많이 배치되어 있던 에피폴레(Epipoles) 지구까지 로마군이 도달한 것이다. 이제 적을 속일 필요는 없었다. 겁을 주기만 하면 되었고, 로마군은 그렇게 해냈다.

첫 나팔 소리와 함께 성벽과 도시 일부를 점령한 로마군의 함성이 울려 퍼지자, 각 초소의 파수꾼들은 도시의 모든 것이 이미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고 믿었다. 어떤 이들은 성벽을 따라 도주했고, 어떤 이들은 해자로 몸을 던졌으며, 또 어떤 이들은 뒤엉킨 피난민들 사이에 깔려 그곳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주민 대부분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참화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술과 잠에 빠져 있었고, 그토록 광대한 도시에서는 한 지구의 비극이 다른 지구에 즉시 전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 마르켈루스의 입성

날이 밝자 헥사필레 문은 마침내 강제로 열렸다. 마르켈루스가 전군을 이끌고 입성하자 포위당하던 시라쿠사 사람들은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고, 반쯤 잃어버린 도시를 구원하기 위해 무기를 쥐고 달려나갔다.

에피키데스의 후퇴

에피키데스(Epicydes)는 나소스(Nasos)라 불리는 섬을 급히 떠나 공격자들과 맞서기 위해 나섰다. 그는 경비병들의 태만 덕분에 적이 소수로 성벽을 넘어왔으리라 판단했고, 어렵지 않게 격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도중에 마주친 도망자들에게 그는 사태를 과장하고 공포를 부추긴다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에피폴레 지구가 온통 적병으로 가득 찬 것을 목격한 순간, 그는 몇 발의 투창을 던진 뒤 아크라디네(Achradina) 방면으로 급히 후퇴했다. 이는 수적으로 우세한 적의 공격을 버티지 못할까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이 혼란을 틈타 내부에서 배반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하고, 소란 속에서 아크라디네와 섬 지구의 성문을 확실히 닫아 통제권을 쥐기 위한 조치였다.

정복자의 눈물

시라쿠사에 들어선 마르켈루스는 높은 곳에 서서 발아래에 펼쳐진, 아마도 당대 가장 아름다웠을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반은 이토록 위대한 원정을 끝마친 기쁨에서, 다른 반은 이 도시의 오랜 영광을 떠올리며 흘린 감회 때문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여러 장면이 스쳤다. 심연에 가라앉은 두 개의 아테네 함대, 유명한 장군들과 함께 궤멸한 두 개의 강대한 군대, 카르타고와 벌인 수많은 험난한 전쟁, 강대했던 여러 참주와 왕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 히에론(Hieron)이었다. 용맹과 승리로,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 민중에게 베푼 은혜로 이름 높았던 군주였다.

이런 추억과 함께, 지금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한 시간 뒤에는 화염의 먹이가 되어 재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결국 마르켈루스는 아크라디네를 공격하기에 앞서, 앞서 로마 진영으로 피신했던 시라쿠사 사람들을 앞세우기로 한다. 그들이 설득을 통해 도시의 항복을 이끌어내리라는 희망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