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족(라틴어: Chatti)은 고대 게르만 부족으로, 기원전후 무렵 오늘날 독일의 베저(Weser) 강과 에더(Eder) 강 상류 지역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이들은 훗날 독일의 헤센(Hessen) 주와 마인(Main) 강 이북의 프랑켄(Franken) 지방 형성의 뿌리가 되었으며, 특히 용맹한 보병 전사들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바타비(Batavi)족은 카티족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여겨집니다.
고대 문헌에 나타난 카티족
카티족은 대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서기 75년경 수에비(Suevi)족, 케루스키(Cherusci)족과 함께 공동 민족 연합의 일원으로 언급했습니다. 이 연합의 이름은 '헤르미노네스(Herminones)'로 전해지지만, 그 성격과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또한 타키투스(Tacitus)의 『게르마니아(Germania)』에 따르면, 바타비족과 마티아키(Mattiaci)족은 원래 카티족에 속해 있었으나, 마티아키족은 내륙 게르마니아의 '자유로운' 민족들보다 로마 쪽으로 빠르게 기울었습니다.
로마와의 충돌
토이토부르크 전투와 라인 방벽
서기 개시 직전, 카티족은 아르미니우스(Arminius)가 이끈 반로마 봉기에 가담했습니다. 그 결실인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바루스(Varus)가 이끄는 로마 군단이 궤멸당했으며, 카티족은 라인 강 동쪽으로의 로마 팽창을 종식시킨 주역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이 사건 이후 1세기에 걸쳐 로마는 카티족 영토 남쪽에 라인 방벽(limes)을 구축했고, 그 과정에서 양측 간에 여러 차례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게르마니쿠스의 원정과 마티움 함락
카티족의 중심 도시였던 마티움(Mattium, 오늘날 헤센 지역)은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 19년)의 라인 강 너머 원정 과정에서 불태워졌습니다.
징벌 원정과 인질
37년경, 카티족은 아그리피나(Agrippina)의 고향이기도 한 우비(Ubii)족 영토까지 약탈을 감행했고, 이에 로마는 루키우스 폼포니우스(Lucius Pomponius)가 지휘하는 징벌 원정을 단행했습니다. 이 원정에서 로마군은 바루스 시대에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되었던 로마인들을 해방시켰습니다(타키투스, 『연대기』). 카티족은 강제로 강화를 맺고 로마에 인질을 보내야 했는데, 그중에는 추장 카투메루스(Catumerus)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아들은 훗날 케루스키족의 왕이 되었습니다(타키투스, 『연대기』 XI, 16).
바타비 반란과 도미티아누스의 원정
70년, 로마 장교이자 시민권자였던 바타비족 출신 빌리스(Civilis)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은 처음에는 제위 경쟁 후보 비텔리우스(Vitellius)를 지지하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으나, 그가 살해되면서 반로마 봉기로 변모했습니다. 빌리스는 라인 강 건너편의 카티족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결국 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대에 의해 패배했습니다.
이후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재위 81~96년)는 내륙 게르마니아의 여러 민족과 함께 카티족과도 다시 교전했습니다(수에토니우스).
5세기 이후의 행적과 기독교화
프랑스 역사가 페르디낭 로(Ferdinand Lot)에 따르면, 카티족은 5세기에 모젤(Moselle) 강 하류에 정착하여 모젤 지역 동부를 개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모젤 계곡은 454년 프랑크족 부족들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카티족의 원향 지역은 8세기 초, 선교사 성 보니파티우스(Saint Boniface)의 활동을 통해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723년 프리츨라르(Fritzlar) 인근에서 카티족이 숭배하던 신성한 참나무를 잘라내는 상징적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문화와 종교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카티족과 헤르문두리(Hermunduri)족 간의 대립을 언급하며, 카티족이 소금이 생산되는 강과 숲에 신성함을 부여했다고 전합니다. 또한 그들은 전투에 앞서 전사들을 전쟁신 마르스(Mars)에게 바치는 의식을 거행했는데, 이는 전투에서 패배할 경우 바쳐진 전사들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게르마니아』에서 타키투스는 카티족의 독특한 통과 의례도 소개합니다. 그들은 전투에서 첫 적을 죽일 때까지 수염과 머리카락을 기르고, 치부의 표시로 쇠반지를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오늘날 남겨진 유산
카티족의 이름은 오늘날 독일의 헤센(Hessen)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라인 강 동쪽으로의 로마 팽창을 막아낸 이들의 발자취는 독일 중부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