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바르가스 시대의 입헌 정부 시기(1934~1937): 정치적 급진화와 에스타두 노부로 가는 길

바르가스 시대의 입헌 정부 단계 동안 브라질 정치는 정치 세력들의 등장과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점진적인 권위주의 조치들로 인해 더욱 급진화되어 갔습니다.

바르가스 시대의 입헌 정부 시기(1934~1937): 정치적 급진화와 에스타두 노부로 가는 길

입헌 정부 시기는 1934년에 시작되어 193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 해 쿠데타를 통해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자세를 점차 강화한 것과, 국민해방동맹(ANL)과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당(AIB)의 활동으로 인해 국내 정치가 급진화된 것이 특징입니다.


브라질 정치의 급진화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브라질 대통령으로 재임한 15년 중 입헌 정부 단계는 1934년 새 헌법이 공포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해 바르가스는 4년 임기로 간접 선거를 통해 재선되었으나 연임은 불가능했고, 따라서 1938년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새 헌법의 공포와 바르가스의 재선이라는 상황에서 주로 입헌 자유주의자들은 바르가스 정부가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것은 정반대였으며, 1934년부터 1937년까지의 브라질 정치는 점진적인 급진화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이러한 급진화는 바르가스 본인뿐만 아니라 등장하여 브라질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정치 세력들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바르가스의 경우 의회 의원들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습니다. 바르가스 정치의 급진화 과정을 이해하기에 앞서, 당시 활동하던 정치 세력들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 세력

바르가스 시대 입헌 정부 단계의 브라질 정치 상황은 국제 정치의 흐름을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경시하는 극단적인 이념이 채택되며 급진화된 시기였습니다.

브라질의 경우 이러한 상황은 두 개의 세력을 탄생시켰고, 이들은 우리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며 사회의 일부를 동원했습니다. 우익 진영에서는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당(AIB)이 결성되었습니다. 통합주의자들은 브라질 정치에서 파시즘을 대표했으며, 유럽에서 행해지던 파시즘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통합주의자들은 표준 색상(녹색)의 제복을 입고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좌파 정치 세력에 대한 거리 폭력을 부추겼습니다. 통합주의자들은 또한 반유대주의를 내세웠으며, 플리니우 살가두가 그들의 핵심 지도자였습니다. 전성기에는 약 20만 명의 당원을 보유했습니다.

좌익 진영에서는 1934년부터 국민해방동맹(ANL)이 활동했습니다. 이 단체는 공산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세력이었습니다. ANL은 브라질 공산당(PCB)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으며, 브라질에서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주요 목표였습니다. 점차 ANL은 국가의 혁명적 변혁을 위해 활동하는 운동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핵심 인물은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치스였습니다. 그는 1920년대에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 정부에 맞서 2년간 싸운 대위단(텐엔치스) 출신 반군 운동인 프레스치스 종대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프레스치스는 모스크바에서 한동안 생활한 후 브라질로 돌아와 바르가스 정권에 맞서는 혁명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ANL은 브라질에서 반파시즘 전선을 이끄는 것 외에도 다음과 같은 주요 이념을 내걸었습니다. “외채 상환의 영구 중단, 공공 서비스의 국유화, 농지 개혁, 임금 인상,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개인의 권리와 자유 보장, 인종 차별 철폐”|1|.

ANL과 브라질 좌파 세력의 활동은 바르가스가 권위주의적·중앙집권적 조치를 점진적으로 취할 구실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는 이미 1934년에서 1935년으로 넘어가는 무렵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1935년 말에 이르러 공산주의자들이 결국 바르가스가 중앙집권적 조치를 확대할 명분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1935년 말, ANL과 PCB에 동조한 공산주의자들은 바르가스 정부에 대한 반란을 조직하여 권력 장악을 노렸습니다. 이 반란은 1935년 공산주의 반란(인텐토나)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헤시피, 나탈, 리우데자네이루 세 도시에서 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참패로 끝났고 신속하게 진압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르가스에게 권력 집중이 더욱 강화되었고, 좌파 인사들에 대한 탄압도 심해졌습니다.


에스타두 노부의 건설

앞서 언급했듯이, 바르가스는 입헌 정부 초창기부터 이미 권력을 스스로에게 집중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1934년부터 1937년까지의 기간 동안 취해진 여러 조치들이 조금씩 에스타두 노부의 실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미 1935년(공산주의 반란 이전에도) 국가안전법이 통과되어, 정부에 '사회 질서'에 대한 어떠한 범죄와도 싸울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습니다.

공산주의 반란 이후에는 브라질 의회 의원들의 지원을 받아 더욱 권위주의적인 조치들이 승인되었습니다. 11월 25일에는 계엄령 포고령이 승인되었고, 12월에는 국가안전법의 규정을 강화하는 수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때 이루어진 세 가지 큰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바르가스에게 모든 공무원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됨
  2. 바르가스의 군 통제권이 강화됨
  3. 바르가스에게 더 많은 비상 권한이 부여됨

1936년에는 국가안전재판소가 설립되어 국가안전법에 규정된 정치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을 기소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같은 해 계엄령이 확대되었고, 박해는 브라질 의회 의원들에게까지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1936년부터 1937년 사이에 바르가스는 군부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권한을 확대할 방법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타두 노부 쿠데타

군부의 지원을 받은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자신의 권한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찾은 방법은 '에스타두 노부'라고 명명한 자쿠데타(자기 쿠데타)를 조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쿠데타는 바르가스의 대통령직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일어났는데, 1934년 헌법에 규정된 대로 새로운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야 했고, 바르가스는 출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36년부터 1937년 사이에 대통령 후보들이 등장했으며, 세 개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상파울루 주지사/연방개입관인 아르만두 살레스, 파라이바 출신의 권위주의 정치인 조제 아메리쿠, 그리고 앞서 언급한 통합주의 운동, 즉 브라질 파시즘 운동의 지도자 플리니우 살가두였습니다. 바르가스의 의도는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937년 바르가스는 반대 세력을 무력화하고 권력 유지를 보장하는 방편으로, 국내에 존재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한번 이용했습니다. 이로써 코엔 계획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통합주의자들이 만든 위조 문서로, 브라질에서 곧 공산주의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코엔 계획은 1937년 9월 전국에 소개되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두 달 후인 11월 10일, 바르가스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의회를 포위하고 의원들을 해임했으며, 매우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새 헌법을 발표하고 검열과 권위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정권, 즉 에스타두 노부를 시작했습니다.

|1| SCHWARCZ, Lilia Moritz and STARLING, Heloísa Murgel. Brazil: A Biography. São Paulo: Companhia das Letras, 2015, p. 369.

*이미지 출처: FGV/CPD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