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키케로가 구한 섹스투스 로시우스: 부친 살해 누명과 고대 로마의 극형

부친 살해 혐의를 쓴 젊은 섹스투스

섹스투스 로시우스(Sextus Roscius)는 로마에 거주하던 같은 이름의 부유한 로마 시민의 아들이었다. 어느 날 밤 그의 아버지가 등에 단검이 꽂힌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곧 아들 섹스투스가 재산을 탐내 유산을 앞당기려고 부친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고대 로마에서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극도로 잔혹했다. 죄인은 먼저 채찍질을 당한 뒤, 굶주린 개와 수탉, 원숭이, 뱀과 함께 자루에 밀봉되어 티베리스 강에 던져졌다. 이 극형을 피해야 했던 섹스투스의 변호를 맡은 이가 바로 젊은 키케로였으며, 재판은 사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포룸에서 열린 공개 재판과 웅변의 기술

재판은 포룸(forum)에서 로마 시민들의 참관 가운데 열렸다. 변호인들은 각계각층의 대중, 특히 재판 말미에 유죄와 무죄를 결정하는 판결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웅변술을 총동원했다. 이들은 아이러니와 언어 유희, 은근한 빈정거림을 적극 활용해 의뢰인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볼거리를 만들어내곤 했다.

증인들의 거짓말과 술라 세력의 음모

재판 과정에서 섹스투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두 명의 증인이 나섰다. 한 명은 그의 사촌 카피토(Capito), 다른 한 명은 그의 공범 마그누스(Magnus)였다. 키케로의 주장에 따르면, 이 두 악당은 잔치가 끝난 뒤 취한 상태로 돌아가던 부친을 살해했다. 마그누스는 시체를 '발견한 척' 연기를 했고, 두 공범은 즉시 독재자 술라(Sulla)의 해방 노예 출신 심복 크리소고누스(Chrysogonus)에게 살인 사실을 알려 자신들의 계획에 끌어들였다.

기원전 82년 술라가 숙청(프로스크립티오)을 시작하면서 그의 동맹들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카피토와 마그누스의 목표는 섹스투스의 이름을 숙청 명단에 올려, 희생자의 재산이 상속인이 아닌 국가로 귀속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 경매에서 섹스투스의 열세 개 농장은 여전히 실력을 휘두르던 크리소고누스에게 불과 2천 세스테르티우스라는 헐값에 넘어갔고, 크리소고누스는 그중 세 개를 카피토에게 내주었다.

위험을 무릅쓴 키케로의 반격

타인을 설득하는 변론을 위해서는 변호인 자신이 먼저 확신을 가져야 한다. 키케로는 빠르게 악당들의 음모를 간파했고, 온 세상을 상대로 홀로 서 있는 섹스투스 로시우스의 처지를 목격했다. 당시 섹스투스와 키케로를 지지한 거의 유일한 인물은 부유한 파트리키(귀족) 가문 출신의 카일리아 메텔라(Caecilia Metella)였다.

키케로는 특히 열세 농장의 경매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판결권자들을 설득해 나갔다. 카피토가 섹스투스의 유산을 노렸고, 크리소고누스의 도움으로 그것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키케로는 큰 위험을 감수한다. 그는 권력자 술라의 절대적 심복을 공공연히 고발했으니, 자신도 숙청 명단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진범이 폭로된 후 로마인들은 키케로를 찬양했고, 그는 여론이라는 일종의 보호막을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키케로는 보복의 위험을 피하고자 웅변술을 더욱 갈고닦기 위해 그리스로 떠났다.

무죄 판결, 그리고 키케로의 첫 번째 영광

섹스투스 로시우스에 대한 고발은 애초에 크리소고누스가 농장을 차지하고, 카피토와 마그누스가 피고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판결권자들은 섹스투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키케로에게 값진 승리였으며,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로마 민중의 눈에 빛나는 웅변가로 떠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