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게 불어난 재산, 시칠리아인들의 고소
기원전 73년, 가이우스 베레스는 시칠리아 속주의 총독(프로프라이토르)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직 기간 내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재산을 불렸고, 임기를 마치고 떠날 무렵에는 그의 부유함이 누구의 눈에도 띄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70년, 시칠리아 주민들은 그가 부정한 행위로 재산을 축적했다며 로마 법정에 그를 고발했습니다.
당시 이미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키케로는 시칠리아인들이 직접 지명한 고발자였습니다. 시민들은 키케로에게 베레스를 고발하고 그가 패소하도록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포룸에서 열린 공개 재판과 웅변가들의 기술
재판은 로마 포룸에서 열려, 로마 시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변호사들은 각계각층의 관중 앞에서, 특히 재판 끝에 유죄·무죄를 결정하는 심판관들 앞에서 호감을 얻기 위해 수사학을 적극적으로 구사했습니다.
그들은 풍자와 말장난, 은근한 암시까지 활용하여 의뢰인을 효과적으로 변호하는 동시에, 재판 자체를 하나의 볼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철저한 증거 수집과 다섯 개의 연설
키케로는 변론 50일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는 직접 시칠리아로 건너가 베레스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증인들을 확보했습니다. 재판은 8월 5일 시작되었고, 키케로는 피고의 온갖 죄악을 다섯 개의 연설을 통해 쏟아냈습니다.
- 『데 프라이투라 우르바나』(De praetura urbana) — 베레스가 도시 프라이토르 재임 중 저지른 부정 행위를 폭로합니다.
- 『데 프라이투라 시칠리엔시』(De praetura siciliensi) — 시칠리아에서 자행한 횡포와 착취를 고발합니다.
- 『데 레 프루멘타리아』(De re frumentaria) — 밀 무역을 사적으로 착복한 과정을 드러냅니다.
- 『데 시그니스』(De Signis) — 귀중한 예술 작품을 강탈하기 위해 사용했던 여러 수단을 낱낱이 열거합니다.
- 『데 수플리키이스』(De suppliciis) — 살인과 잔혹 행위를 폭로하여 피고가 주장할 수 있는 '무죄'의 가능성을 완전히 지워버립니다.
3일 만에 끝난 재판, 도주한 베레스
결국 단 3일 만에 승부가 갈렸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자로 몰린 베레스는 패소를 확신하고 도망쳤습니다. 키케로에게는 커다란 승리였지만, 남은 연설을 모두 진행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설문을 출간하여 그 내용을 널리 알렸습니다.
개인 고발을 넘어선 정치적 파장
키케로의 공격은 한 개인을 넘어섰습니다. 그것은 곧 귀족 계급과 원로원 전체에 대한 고발이었습니다. 당시 원로원 의원들은 뇌물을 받고 귀족들을 무죄로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그렇게 정의를 짓밟고 있었습니다.
키케로는 원로원의 권력 남용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그 반향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술라의 법이 폐지되었으며, 원로원은 더 이상 돈을 받고 귀족에게 특혜를 줄 권한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