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발렌티니아누스 2세: 네 살에 즉위한 로마 황제와 그의 비극적 최후

발렌티니아누스 2세 개요

발렌티니아누스 2세(371년~392년)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아들이자, 375년부터 392년까지 재위한 로마 제국의 황제입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끊임없는 권력 다툼 속에 놓였으며, 그의 생애는 후기 로마 제국의 혼란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네 살의 황제 즉위

375년, 형인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판노니아 주둔군은 불과 네 살에 불과한 발렌티니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습니다. 그라티아누스는 이러한 제국 분할을 수용하였고, 일리리쿰 지역을 발렌티니아누스 2세에게 양도함으로써 동생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세 황제의 시대

383년 형 그라티아누스가 사망하자, 제국에는 세 명의 황제가 공존하는 독특한 국면이 펼쳐졌습니다. 트리어에 근거지를 둔 막시무스, 밀라노에서 모후 유스티나(Flavia Justina Augusta)의 섭정 아래 있던 발렌티니아누스 2세,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 1세가 바로 그들입니다.

모후 유스티나는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였으며, 심마쿠스나 프레텍스타투스와 같은 저명한 이교 인사들에게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막시무스의 추방과 테오도시우스 1세의 개입

387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로마를 점령하고 이탈리아 전역을 차지한 막시무스에 의해 추방당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처음에 테오도시우스 1세는 개입 여부를 두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누이 갈라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게 되면서, 테오도시우스 1세는 마침내 막시무스에 대한 군사 행동을 결심합니다.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티베르강 하구에 상륙하는 동안, 테오도시우스 1세는 막시무스를 격파하고 아퀼레이아에서 그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의문으로 가득한 최후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수도 비엔(Vienne)으로 돌아왔지만, 392년 테오도시우스로부터 어린 아우구스투스의 보호를 맡겨진 프랑크족 출신 군사장관(magister militum) 아르보가스트에게 암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일부 역사가들은 자살이라는 견해를 지지하기도 합니다. 그의 죽음 이후 아르보가스트는 이교도 수사학자 에우게니우스를 새 황제로 옹립하며 정국을 장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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