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04. 서방은 비잔티움을 포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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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은 비잔티움을 포기하다

수도를 지키기 위해 드라가세스(콘스탄티누스 11세 팔레올로고스)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유럽의 원조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비잔티움의 군주들은 서방 열강과 합의를 이루려고 애썼지만, 모든 노력은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서방의 지원을 얻으려면 로마와의 타협, 즉 종교적 통합으로의 회귀가 필요했고, 이는 곧 실질적으로 교황의 영적 우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였습니다. 1438년 페라라에서 개최되어 이후 피렌체로 옮겨진 공의회에 파견된 그리스 대표단은 마침내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허사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백성은 물론, 그리스와 슬라브를 아우르는 정교회 세계 전체가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1453년, 서방은 이 오래된 국가를 그저 운명에 맡겨 두었습니다. 공성전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직접 위협받는다고 느낀 제노바와 베네치아는 극소수의 선박과 수백 명의 병사를 보냈습니다. 이들은 성벽 방어전에서 용맹한 조반니 주스티니아니(베네치아 출신)의 지휘 아래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서방이 제공한 원조의 전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