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03. 재난의 서곡 —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비잔티움

1403년, 티무르 랑(타메를란)이 이끄는 타타르 군대는 앙카라에서 술탄 바예지드 1세의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하며 오스만의 팽창 물결을 잠시 저지했다. 이 승리는 의도치 않게 비잔티움에 숨을 돌릴 짧은 기회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안식일 뿐이었다.

무라드 2세(1421~1451)의 통치 아래 튀르크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대부분과 테살로니키를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말년의 무라드는 비교적 평화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젊은 메흐메트 2세는 전혀 다른 기질의 인물이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제국의 심장부에 박혀 있는 옛 수도를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쇠락한 도시, 그러나 여전히 거대한 상징

흥미롭게도 이미 임종을 앞둔 도시조차 여전히 막강한 위상을 자랑하고 있었다. 실제로 무라드 2세 본인이 1422년 직접 공성전을 벌였으나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기에 후계자 메흐메트는 극도로 소극적인 신하들을 상대로 결단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이미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12세기에는 거의 100만에 달했던 인구가 1450년경에는 겨우 5만 명 남짓으로 줄어든 것이다. 당시 여행자들은 성벽 안팎이 텅 비고 초라해진 도시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보스포루스 해협 건너편에 펼쳐진 교외 지역은 이미 튀르크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였다. 도시를 두 부분으로 가르는 황금뿔(Golden Horn) 만 입구 너머에 위치한 페라(Pera) 역시 사실상 독립 도시처럼 행동하는 제노바의 식민지였다.

루멜리 히사르 요새와 외교적 결렬

그리고 곧 콘스탄티노플 북쪽 보스포루스 해협 기슭에 거대한 요새가 우뚝 솟아올랐다. 이 요새는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튀르크인들은 이곳을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ı)'라고 부른다.

비잔티움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 드라가세스는 처음에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이 경험 없는 젊은 술탄을 얕보며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 이 명백한 적대 행위에 항의하는 사절단을 파견했는데, 메흐메트가 내린 대답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사절들의 목을 잘라버린 것이다. 두 세력 사이의 긴장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