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프랑스 북부 릴(Lille)의 뤼 프랭세즈 9번지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다. 다만 ‘플랑드르의 수도’ 릴에서만큼은 예외다. 1990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된 그의 생가는 오랫동안 박물관으로 꾸며져 왔으며, 최근 전면 개보수를 마쳤다. 이미 콜롱베레두즈글리즈 기념관과 파리 육군박물관 안의 샤를 드골 히스토리알이 있음을 생각하면, 제5공화국의 창시자를 기리는 공간이 또 하나 더 필요했을까 싶다. 그러나 이곳은 확실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19세기 말, 북부 산업 부르주아 가정의 재현
생가 박물관은 다른 추모 공간과는 차별화된 길을 택했다. 바로 19세기 말 프랑스 북부 산업 부르주아 가정 특유의 실내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관람객은 방마다 이어진 전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린 드골이 성장한 환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훗날 그의 삶과 행보를 이해하는 단서들을 만나게 된다.
다섯 남매 중 셋째였던 샤를 드골은 1890년 11월 22일, 호황을 누리던 방직업자 조부모의 집 한 침실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례 때 입었던 예복은 지금도 생가의 옷장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집안의 모든 방에는 십자고상이 놓여 있었고,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작은 응접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참전 용사로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아버지 앙리 드골의 훈장은 넓은 거실에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은 훌륭한 유리 지붕이 덮인 겨울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는데, 이 공간은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누나 마리아녜스의 회상에 따르면, 병정 인형 놀이를 벌일 때면 “샤를은 언제나 프랑스 국왕이었다. 프랑스군은 반드시 그의 지휘 아래 있어야 했다. 다른 경우란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수준 높은 개보수 덕분에 박물관은 따뜻하고 감동적인 가족의 향기를 되살려냈다. 드골은 스스로를 ‘파리에 사는 릴 사람’이라 불렀으며, 회고록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언제나 가장 크게 남는다. 내가 진정한 나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내가 태어난 뤼 프랭세즈일 것이다”라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