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9년 출생 ~ 1626년 낭트(Nantes)에서 사망.
샬레 백작 앙리 드 탈레랑은 누구인가?
샬레 백작 앙리 드 탈레랑(Henri de Talleyrand, 1599~1626)은 17세기 프랑스의 귀족으로, 루이 13세의 의복을 관리하는 시종장(궁내 복식 담당관)을 지낸 국왕의 총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방탕하고 일관성 없는 삶을 살았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리슐리외와의 대립, 그리고 첫 번째 음모
슈브뢰즈 공작부인(Duchesse de Chevreuse)의 연인이었던 샬레는 리슐리외 추기경과 국왕을 상대로 처음에는 음모를 꾸몄으나 용서를 받았다. 다만 조건이 붙었다.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Gaston d'Orléans)이 몽팽시에 마드모아젤(Mademoiselle de Montpensier)과 혼인하도록 적극적으로 부추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음모와 잔혹한 최후
그러나 샬레는 이 조건을 성실히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1626년 오스트리아의 안(Anne of Austria) 왕비와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과 손잡고 새로운 음모에 가담했다. 결국 그는 고발당해 체포되었고, 공정성이 크게 의심되는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관들은 그가 공범들의 이름을 모두 고발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약속했고, 샬레는 실제로 동료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낭트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숙련도가 부족했던 형집행인이 그의 머리를 몸통에서 분리하기까지 무려 서른네 번이나 칼질을 반복해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참혹한 최후는 당시 궁정 정치의 냉혹함과 권력 투쟁의 이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