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은 단순히 미국 식민지와 영국 간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의외로 독일인들이 이 전쟁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는데, 가장 역설적인 점은 유럽의 군소 독일 국가들이 자국의 대대와 연대 전체를 영국에 '임대'하는 형태로 전쟁에 가담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독일 동맹군 대부분은 헤센카셀과 헤센하나우 출신이었으며,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에서도 많은 병사가 파견되었습니다. 특히 하노버는 당시 영국 국왕의 영지였기 때문에 그 군대는 일종의 영국 왕실 소속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군소 독일 국가들이 영국에 병력을 제공했습니다.
발데크 공국의 병사들
작은 공국 발데크도 특별한 협약에 따라 영국에 병사를 보낸 독일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발데크 공 프리드리히 카를 아우구스트는 684명 규모의 연대를 조직해 영국 지휘 아래 배치했고, 이 부대는 1776년 미국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발데크 부대는 뉴욕 전역에 참전한 뒤, 폰 크니프하우젠(von Kniphausen) 장군 휘하 헤센 사단에 배속되며 독일군 지휘 체계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1778년에는 발데크 제3연대가 플로리다로 보내졌지만, 다른 부대와 합동 작전을 수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영국군은 이들을 소규모 부대로 나누어 여러 주둔지에 흩어 배치했고, 독일 병사들은 종종 미국인과 인디언, 그리고 무엇보다 질병과 홀로 맞서야 했습니다. 스페인이 영국에 선전포고한 사실조차 모른 채 주둔하고 있던 독일 부대는 플로리다에서 스페인군의 기습을 받고 말았습니다.
많은 병사가 포로로 잡혔고, 살아남은 이들은 1782년에야 석방되었습니다. 발데크가 총 1,225명을 미국에 보냈지만 그중 720명을 잃었습니다. 이 가운데 358명이 질병으로 사망했고, 전투에서 전사한 이는 겨우 37명에 불과했습니다.
안스바흐와 바이로이트
안스바흐와 바이로이트 변경백국도 영국에 군대를 임대한 또 다른 독일 국가였습니다. 이들은 보병 2개 대대, 저격병(샤쇠르) 1개 중대, 그리고 포병을 제공했으며, 총 1,644명이 뉴욕 전역에 참전해 그중 46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병사들을 빌려준 대가로 10만 파운드를 받은 군주 카를 알렉산더였지만, 결국 재정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지를 프로이센에 팔아넘겨야 했으며, 말년을 잉글랜드에서 보냈습니다.
안홀트-체르프스트
안홀트-체르프스트 공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1777년 영국과 협약하여 자신의 병사 1,160명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이 가운데 600명 규모의 대대 하나는 캐나다 퀘벡에 주둔군으로 파견되었고, 약 500명으로 구성된 '판두르'(경보병) 대대는 뉴욕 방어 임무를 맡았습니다.
약 3만 명의 독일 용병들
이처럼 총 약 3만 명의 독일 병사가 영국 편에서 미국 땅에서 싸웠습니다. 이들 가운데 약 1만 7,000명이 유럽으로 돌아갔고, 1,200명이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거의 6,500명이 질병과 고난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편 약 5,000명의 독일인은 새로 탄생한 국가에 남기를 선택해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