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상징으로 삼다
루이 14세는 태양을 자신의 상징으로 선택했습니다. 태양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별이자, 동시에 질서와 규율의 상징입니다. 그는 궁정과 신하들, 그리고 프랑스 전역을 태양처럼 군림하며 다스렸습니다. 실제로 궁정 귀족들은 마치 태양의 일주와 같은 왕의 하루 일과를 따라 움직였습니다(참고: 베르사유의 하루). 심지어 궁정에서 열린 연회에서는 태양으로 분장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한낱 자연의 힘 같은 왕
루이 14세는 키가 크지 않은 편(약 175cm)이었지만, 세련된 품격과 강렬한 존재감, 미모, 당당한 위엄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건강은 매우 튼튼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더위도 추위도, 비바람도 우박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남들이 그런 것들로 고통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르봉 가문의 사람답게 대식가였던 그의 폭식에 가까운 식욕은 목격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춤을 무척 좋아했으며, 발레 공연과 쥬 드 포름(jeu de paume, 현대 테니스의 원형이 되는 구기 종목)을 즐겼습니다. 카페 왕조의 거의 모든 인물이 그랬듯, 그 역시 지치지 않는 사냥 애호가이기도 했습니다.
루이 14세는 주변의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열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귀는 곳곳에 있었죠. 베르사유에서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살피는 스위스 근위대 덕분에, 그는 자신에 대해 어떤 소문이 돌고 있는지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연인
루이 14세는 많은 정부(情婦)를 두었는데, 그중에는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앙젤리크 드 퐁탕주, 마담 드 몽테스팡, 그리고 마담 드 망트농(왕비의 죽음 이후인 1683년 가을로 추정되는 시기에 비밀리에 결혼)이 있습니다. 10대 시절에는 마자랭 추기경의 조카인 마리 만치니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열정이 피어났지만, 프랑스와 자신의 이익을 잘 아는 추기경은 왕이 스페인 인판타와 결혼하도록 만들며 이 사랑을 좌절시켰습니다. 1670년, 장 라신은 왕과 마리 만치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비극 『베레니스(Bérénice)』를 집필했습니다.
훗날 '카토 라 보르네스(Cateau La Borgnesse)'라 불린 카트린 드 보베가 어린 왕의 성적 입문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역사학자들은 이 주장에 큰 의문을 품습니다. 다만 '미천한 출신'이라는 이 여성은 오스트리아의 안 태후에게서 놀라운 선물을 받을 만큼 특별한 영예를 누렸습니다. 원래 루브르 궁전 공사에 쓰일 예정이었던 값진 보석들로 보상받은 그녀는 이를 통해 파리에 저택을 지었고, 그것이 현재 프랑수아 미롱 거리 68번지에 자리한 오텔 드 보베(Hôtel de Beauvais)입니다.
여성을 열렬히 사랑하게 된 그는 베르사유에 여러 정부에게 몰래 드나들 수 있는 비밀 계단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경건한 신앙 단체인 생사크르망 회를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고, 보쉬에 주교와 마담 드 망트농은 왕이 더욱 덕 있는 삶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데 힘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