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 최초의 공식 에이스, 하네스 겐첸

하네스 겐첸(Hannes Gentzen)

1940년 4월, 개인 전과 순위의 정점에 서다

하네스 겐첸이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루프트바페 소속 장교는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제2차 세계대전 최초의 공식 에이스가 된 인물이다.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대위(Hauptmann)였던 겐첸은 I./ZG 2를 지휘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Bf.110을 인수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임시 명칭인 JGr.102로 개칭되어 Bf.109D를 운용했다. 1939년 9월 1일부터 그의 부대는 폴란드 침공 작전에 투입되었다.

단 이틀 만에 '에이스' 반열에

단 이틀 만에 겐첸은 에이스 타이틀 획득의 필요충분조건인 5승에 도달하고 이를 넘어섰다. 9월 3일, 그의 비행단이 지상에서 폴란드 항공기 9기를 파괴한 출격 임무에서 그는 가는 길에 PZL P.11 한 기를, 돌아오는 길에는 PZL P.37 '워지(Łoś)' 한 기를 격추했다. 저녁에는 세 번째 희생자인 P.11 한 기가 데블린 근교에서 불타며 추락했다. 다음 날 브로드니 상공에서 겐첸은 P.37 편대를 요격해 혼자 네 기를 격추했고, 이로써 개인 확인 전과는 7승에 달했다.

폴란드 공군이 궤멸된 후 전술 지원 임무는 막을 내렸고, 캠페인은 9월 27일 종결되었다. 그날 제국 원수 괴링이 직접 찾아와 JGr.102의 지휘관에게 1급 철십자 훈장(EK I)을 수여했다.

'가짜 전쟁' 속의 참패

여전히 Bf.109D를 타던 JGr.102는 서부 전선으로 파견되었다. 롤랑 도르줄레스가 '가짜 전쟁(Drôle de guerre)'이라 불렀던 이 시기, 독일군과 연합군은 서로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었지만 프랑스군과의 소규모 교전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라헨/슈파이어도르프에 주둔한 JGr.102는 11월 6일 프랑스 공군과 정면 충돌했다. 겐첸이 이끄는 27기의 Bf.109D가 메츠 북방에서 제11/5 전투비행단(G.C.) 소속 커티스 H-75A 9기와 마주친 것이다. 이어진 격렬한 공중전에서 독일 전투기 D형의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메서슈미트 4기가 프랑스 진영 쪽으로 격추되었고, 4기가 더 자기 진영에 추락했다. 인정된 승리는 겐첸이 후제(Houzé) 중위를 격추한 단 한 건뿐이었다.

이 심각한 패배로 JGr.102는 본(Bonn)으로 철수했고, 겐첸은 프랑스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대서특필한 이 쓰디쓴 실패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소환되었다.

순위 정상, 그리고 갑작스러운 최후

마침내 Bf.110으로 재장비를 마친 부대는 I./ZG 2로 복귀해 1940년 4월 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4월 7일, 겐첸은 제1/5 전투비행단 소속 살망(Salmand) 준위의 H-75A를 격추하며 9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이 무렵 그는 베르너 뫼르더스보다 한 승 앞선 개인 전과 순위 1위에 올라 있었다.

소령으로 진급한 겐첸은 프랑스 침공 작전에서 아홉 번의 추가 승리를 쌓았다. 총 18승, 즉 베르너 뫼르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과를 세운 바로 그 시점인 1940년 5월 22일, 그의 비행사 인생은 갑작스럽게 끝나버렸다.

그날 겐첸은 뇌프샤토(Neufchâteau) 비행장에서 자신의 조종사들 앞에서 일종의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영국군 페어리 배틀(Fairey Battle) 경폭격기 편대가 활주로 위를 저공으로 통과했다. 이들을 요격하고자 했던 겐첸은 자신의 기체로 달려갔고, 사수 자리에 탑승한 도마이어(Domeier) 중위가 뒤따랐다. 그러나 이륙 과정에서 메서슈미트 Bf.110이 나무에 충돌했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