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그렌빌: 영국 '전재 내각'을 이끈 휘그당 총리

윌리엄 윈덤 그렌빌(William Wyndham Grenville, 1759년 10월 25일 버킹엄셔 우턴 하우스 ~ 1834년 1월 12일 버킹엄셔 번햄)은 제1대 그렌빌 남작으로, 추밀원 의원을 지낸 영국 휘그당 소속 정치가이자 조지 3세 국왕 치세의 총리(1806년 2월 11일 ~ 1807년 3월 31일)였다.
초기 생애와 정계 입문
그렌빌은 이튼 칼리지,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그리고 링컨즈 인에서 수학했다. 휘그당 출신 총리 조지 그렌빌과 토리당 정치가 윌리엄 윈덤 경의 딸 엘리자베스 윈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782년 하원 의원에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그의 형 토머스 또한 하원 의석을 갖고 있었다.
소 피트 정부에서의 경력
그렌빌은 곧 사촌이자 총리였던 소 피트(윌리엄 피트 더 영거)의 핵심 동맹으로 부상했다. 그는 1782년부터 1783년까지 아일랜드 담당 국무차관, 1784년부터 1789년까지 군수국장, 1786년부터 1789년까지 무역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하며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1789년에는 잠시 하원 의장을 지냈고, 이후 내각에 들어가 내무장관(Home Secretary)으로 임명되었다. 1790년 귀족으로 서임되어 그렌빌 남작이 된 그는 같은 해부터 1801년까지 귀족원 원내대표를 맡았으며, 1790년부터 1793년까지는 통제위원회 위원장을 겸했다. 1791년에는 리즈 공작의 뒤를 이어 외무장관에 올랐고, 이후 1794년부터 1834년까지 재정감사관을 역임했다.
그렌빌이 외무 업무를 맡은 10여 년은 프랑스 혁명 전쟁이 격화되던 극적인 시기였다. 전쟁 기간 동안 그렌빌은 대륙에 대한 군사 개입이 승리의 열쇠라고 주장하는 파벌을 이끌었으며, 해상·식민지 전쟁 중심의 전략을 선호하던 헨리 던다스(Henry Dundas) 파벌과 대립했다. 1801년 천주교 해방(가톨릭 교도 해방) 문제로 피트가 사임하자, 그렌빌 역시 함께 관직을 떠났다.
'전재 내각'의 수반
이후 몇 년 동안 그렌빌은 휘그당 야당 지도자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와 급속히 가까워졌다. 1804년 피트가 정계로 복귀했을 때 그렌빌은 그의 내각에 합류하지 않았다. 1806년 피트가 사망하자 그렌빌은 그렌빌파, '폭스파' 휘그당원, 그리고 전 총리 시드머스 경의 지지 세력으로 구성된 연립 내각, 이른바 '전재 내각(Ministry of All Talents)'의 지도권을 넘겨받았다. 재무부 장관 그렌빌과 외무장관 폭스가 이 내각의 양대 축이었으며, 그렌빌의 사촌 윌리엄 윈덤은 육군·식민지 장관을, 동생 토머스 그렌빌은 잠시 해군본부 장관을 맡았다.
약 1년 만에 무너진 이 내각은 프랑스와의 강화에도 실패했고, 천주교 해방 문제 역시 처리하지 못해(이 갈등이 1807년 3월 정부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큰 성과 없이 끝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807년 노예 무역 폐지법을 성사시킨 것은 이 내각이 남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이다.
말년의 정치 활동
내각 붕괴 후 그렌빌은 야당에 머물며 그레이 경과 휘그당과의 동맹을 유지했다. 그는 스페인에 대한 군사 개입을 비판했으며, 1812년 그레이와 함께 리버풀 경의 정부 초청을 거절했다. 전후에는 점차 토리당 쪽으로 기울었지만, 끝내 정부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그의 정치 경력은 1823년 건강 악화로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그렌빌은 또한 1809년부터 1834년 사망할 때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총장(Chancellor)직을 수행했다. 1790년 그를 위해 새로 제정된 그렌빌 남작 작위는 1834년 그의 죽음과 함께 단절되었다.
전재 내각 구성 (1806년 2월 ~ 1807년 3월)
- 그렌빌 경 – 재무부 장관 겸 귀족원 원내대표 (1806~1807)
- 찰스 제임스 폭스 – 외무장관 겸 하원 원내대표
- 어스킨 경 – 대법관(Lord Chancellor)
- 피츠윌리엄 경 – 추밀원 의장
- 시드머스 경 – 왕실 인장 보관관(Lord Privy Seal)
- 스펜서 경 – 내무장관
- 윌리엄 윈덤 – 육군·식민지 장관
- 호윅 경 – 해군본부 장관
- 헨리 페티 경 – 재정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
- 모이라 경 – 포병 감독관(Master-General of Artillery)
- 엘렌버러 경 – 잉글랜드 및 웨일스 고등법원장
내각 변동 사항
1806년 9월 폭스가 사망하자, 호윅 경이 그의 뒤를 이어 외무장관 겸 하원 원내대표가 되었고, 토머스 그렌빌은 호윅의 빈자리를 채워 해군본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피츠윌리엄 경은 무소속 장관(Minister without Portfolio)으로 물러났고, 시드머스 경이 추밀원 의장 자리를 계승했으며, 홀랜드 경이 시드머스의 후임으로 왕실 인장 보관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