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루이 가브리엘 쉬셰, 알부페라 공작 –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원수

루이 가브리엘 쉬셰(Louis-Gabriel Suchet)는 1770년 3월 2일 리옹에서 태어나 1826년 1월 3일 마르세유에서 생을 마감한,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원수입니다. '알부페라 공작(Duc d'Albufera)' 칭호를 받은 그는 특히 스페인 전선에서 뛰어난 통솔력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루이 가브리엘 쉬셰, 알부페라 공작 –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원수
쉬셰, 루이 가브리엘, 알부페라 공작

군 입대와 초기 경력

비단 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쉬셰는 탄탄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1791년 리옹 국민방위대에 입대하여 대위 계급까지 올랐고, 1793년 9월에는 아르데슈(Ardèche) 의용병들의 선출로 중령이 되었습니다. 이후 툴롱 공성전에서 본격적으로 전쟁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탈리아 전역과 장군으로의 발탁

1794년 이탈리아 방면군에 배속된 그는 당시 벌어진 주요 전투 대부분에 참전했습니다. 1797년 여단장에 임명되었고, 브륀(Brune) 장군의 참모장을 거쳐 1798년 3월 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브륀 휘하 근무 중 행정 처리 문제로 곤경에 처해 파리에서 해명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이집트 원정 함대에 동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799년 이탈리아 방면군에서 사단장 겸 주베르(Joubert)의 참모장으로 복무하던 그는 같은 해 8월 15일 노비(Novi) 전투에서 주베르가 전사하자 방면군의 지휘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마세나(Masséna) 군과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바르(Var) 강까지 후퇴했으며, 마세나가 항복한 직후인 1800년 6월 22일 제노아(Genoa)를 탈환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801년에는 보병 감찰관에 임명되었습니다.

대육군 복무와 스페인 전선

1805~1806년에는 대육군(Grande Armée)에서 란(Lannes) 휘하에서, 1807년에는 폴란드 전역에서 마세나 휘하에서 각각 복무했습니다. 1808년 제국 백작에 서임되고 스페인으로 파견되어 아라곤 방면군 사령관이 된 그는 신중함과 끈질긴 추진력으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카탈루냐의 요새들을 하나씩 차례로 함락시켰으며, 엄격한 군규를 확립해 약탈과 횡포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한편, 부하 병사들의 처우와 보급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루이 가브리엘 쉬셰, 알부페라 공작 –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원수
쉬셰의 문장

원수 서임과 발렌시아 함락

그의 군은 1812년 1월 19일 발렌시아(Valencia) 함락으로 최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쉬셰는 같은 해 1월 24일 공작 작위를 받았으며, 이미 1811년 7월 8일 프랑스 원수(Maréchal de France)에 임명되어 있었습니다.

철수와 말년

이후 그는 게릴라들의 저속에 맞서며 영국군의 상륙을 차단하는 가운데 발렌시아와 카탈루냐를 단계적으로 철수했고, 군대를 질서 있게 동피레네 산맥 방면까지 후퇴시켰습니다. 백일천하(Hundred Days) 기간에는 다시 나폴레옹 진영에 합류하여 리옹 방어 임무를 맡았습니다. 왕정복고 후 루이 18세는 그의 귀족 자격을 박탈했으나 1819년 이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쉬셰의 이름은 오늘날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에 새겨져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