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필리베르 장바티스트 프랑수아 쿠리알 백작 —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장군

필리베르 장바티스트 프랑수아 쿠리알 백작

1774년 4월 21일 생피에르달비니(Saint-Pierre-d'Albigny)에서 태어나 1829년 5월 30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전쟁부터 나폴레옹 전쟁까지 걸친 프랑스 육군의 유명한 장군입니다.

필리베르 장바티스트 프랑수아 쿠리알 백작 —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장군
쿠리알 장군의 초상화

혁명 전쟁과 이집트 원정

1792년 알로브로주 군단(Légion des Allobroges)에 자원입대한 쿠리알은 1793년 대위로 승진했으며, 알프스와 피레네 전선에서 복무한 뒤 이탈리아 방면군과 스위스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이집트 원정 당시에는 알메라(Alméras)의 부관으로 근무하면서 보나파르트로부터 대대장에 임명되었고, 이후 메누(Menou) 장군에 의해 여단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대육군과 아우스터리츠 전투

1805년부터 1807년까지 대육군(Grande Armée) 소속으로 복무하며 아우스터리츠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1806년 5월 근위 엽보병(chasseurs à pied) 소령으로 승진한 그는 예나(Jena)와 아일라우(Eylau)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고, 1807년 2월 16일에는 근위 연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같은 해 6월 10일 하일스베르크(Heilsberg) 전투에서 머리에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25일 준장으로 임명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제국 남작 서임과 에스파냐·오스트리아 전역

1808년 제국 남작(Baron of the Empire) 칭호를 받았습니다. 1808년 11월부터 1809년 1월까지 나폴레옹을 따라 에스파냐(스페인)에 동행한 뒤 귀환하여 오스트리아군 상대 전역에 참가했으며, 1809년 5월 22일 에슬링(Essling) 전투에서도 활약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사단장(Général de division)으로 승진했습니다.

러시아 원정과 근위대 지휘

러시아 원정 당시에는 노장근위대(Vieille Garde) 제3사단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1813년에는 노장근위대 엽보병의 지휘권을 넘겨받은 데 이어 신장근위대(Jeune Garde) 제1사단장이 되었습니다. 1814년에는 여러 부대를 지휘하며 방어전을 수행했고, 제국이 몰락하는 바로 그 시점인 3월 22일 제국 백작(Comte de l'Empire)에 서임되었습니다.

백일천하와 말년

백일천하(Cent-Jours) 기간에는 알프스 방면군 소속으로 복무했으며, 이후 기병 감찰관(Inspecteur général de la cavalerie)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공헌을 기려 그의 이름은 파리 개선문(Arc de Triomphe)에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