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라페루즈: 태평양 대탐사 끝에 미스터리로 사라진 프랑스의 전설적 항해사

라페루즈: 태평양 대탐사 끝에 미스터리로 사라진 프랑스의 전설적 항해사
장프랑수아 드 갈로, 라페루즈 백작(Jean François de Galaup, comte de La Pérouse)
1741년 알비 근교 르구(Le Guo) 출생 – 1788년 바니코로 섬에서 생종(추정)

해군 장교로서의 길

라페루즈는 해군학교에서 수학한 뒤 여러 차례의 해전에 참전했습니다. 1759년 11월 20일, 호크(Hawke)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벨르일 앞바다에서 콩플랑 원수의 프랑스 함대를 대파한 키브롱만 해전에서, 그는 포르미다블호(Formidable)에 승선해 있다가 중상을 입은 채 포로로 잡히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미국 독립전쟁에서는 장교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1779년에는 서인도 제도 해전에 참전했고, 1780년에는 아스트레호(L'Astrée)의 선장으로 승진하여 라투슈트레빌과 함께 로얄 섬 근해에서 적선 두 척을 나포했습니다. 1782년에는 허드슨만 항해 중 웨일스 왕자 요새와 요크 요새를 공략해 완전히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루이 16세가 꿈꾼 태평양 대탐사

1783년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후, 라페루즈는 과학 탐사 원정의 지휘를 맡게 됩니다. 이 원정은 루이 16세의 측근들이 극비리에 준비했으며, 세부 계획은 국왕이 직접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크로노미터(항해용 정밀 시계)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태평양 탐사(1770~1778)의 연장선에 놓인 이 사업은, 쿡(Cook)과 부갱빌(Bougainville)의 뒤를 잇는 것이었습니다.

라페루즈는 선배 탐험가들의 방법론을 한층 체계화했습니다. 그의 조사선에는 해도 작성실과 도서관, 각종 관측 기구가 갖춰져 있었고, 몽주(Monge), 라마르티니에르(La Martinière), 르셉스(Lesseps) 등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동행했습니다.

30개월에 걸친 대항해

1785년 8월 1일, 라페루즈는 두 척의 프리깃함 라부솔호(La Boussole)와 아스트롤라브호(L'Astrolabe)를 이끌고 브레스트를 출발했습니다. 혼곶을 돌아 북아메리카 북서해안까지 올라가 세인트엘리어스 산 일대를 답사했는데, 이곳은 쿡조차 해류에 막혀 제대로 탐사하지 못했던 바다였습니다. 이 조사는 훗날 밴쿠버(Vancouver)에 의해 더욱 보완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샌드위치 제도(하와이)로 항해하여 네커 섬을 발견했고(1786년 9월 5일), 마카오와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1787년 8월 2일에는 사할린 섬과 한반도 사이의 해협을 확인했는데, 이 해협은 오늘날 '라페루즈 해협'이라 불립니다. 이어 쿠릴 열도 사이의 수로를 통과하여 9월 7일 캄차카의 페트로파블롭스크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분함대 사령관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는 장바티스트 드 르셉스(Jean-Baptiste de Lesseps)에게 항해일지와 해도를 시베리아 육로를 통해 프랑스로 운반하게 했습니다. 이후 쿠릴 열도 조사를 계획했으나 서풍에 막혀 단념하고 남하하여 항해자 제도(사모아)에 도착합니다. 불행히도 이곳에서 아스트롤라브호의 선장 플뢰리오 드 랑글(Fleuriot de Langle)이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우호 제도(통가)를 거쳐 1788년 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의 보타니 만에 도착했고, 2월 7일에 보낸 편지가 그의 마지막 흔적이 되었습니다.

40년간의 미스터리, 그리고 진실

30개월간의 항해 끝에 이어진 것은 긴 침묵이었습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라페루즈 일행의 운명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1791년 당트르카스토(d'Entrecasteaux)가 구조 원정대를 파견했지만 아무 성과 없이 돌아왔고, 라페루즈의 항해 기록은 1808~1809년에야 출판되었습니다.

마침내 1826년, 영국 선장 딜런(Dillon)이 티코피아 섬 주민의 손에서 라페루즈의 이니셜이 새겨진 칼자루를 발견하고, 그것이 인근 바니코로 섬(뉴헤브리디스 제도, 현 바누아투)에서 온 것임을 확인합니다. 3년 뒤인 1829년, 폭풍우에 산호초에 좌초된 아스트롤라브호의 잔해가 뒤몽 뒤르빌(Dumont d'Urville)에 의해 발견되면서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라페루즈와 그의 동료들은 난파 후 바니코로 섬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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