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알렉상드르 듀란 리누아(Charles-Alexandre Durand Linois) 백작은 1761년 1월 27일 프랑스 브레스트에서 태어나 1848년 12월 2일 베르사유에서 생을 마감한 해군 제독입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전쟁부터 나폴레옹 전쟁에 이르는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활약했으며, 특히 인도양에서 영국 상선들을 위협한 원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 해군 경력
15세에 자원입대한 리누아는 1778년 오르빌리에(Orvilliers) 함대에 배속되어 영국 해협 원정과 카디스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781년 소위로 임관한 뒤에는 프랑스령 섬(Île de France, 오늘날 모리셔스)과 서인도제도에서 복무했습니다. 1789년 5월에는 항구 중위로 임명되었고, 1790년에는 인도양 해역 원정에 참여하기 위해 출항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쟁 시기
1794년 3월 귀환한 리누아는 빌라레 드 주아즈(Villaret de Joyeuse) 제독의 지시를 받고 반 스타벨(Van Stabel)이 호위하던 미국산 밀 수송선단과의 합류 임무를 수행하다가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석방 후 대위로 진급했지만, 1795년 6월 23일 그루아 해전에서 다시 한번 포로로 잡히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1796년 분함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아일랜드 원정에 동행했으며, 1799년 4월에는 브레스트 함대 참모장 겸 해군 소장(rear-admiral)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지중해 활동과 알헤시라스 해전
1799년 브뤼(Bruix) 제독 휘하에서 지중해에서 활동한 리누아는 강톰(Ganteaume) 함대의 부사령관으로서 1801년 5월 엘바섬 공격을 지휘했습니다. 이후 카디스로 이동하여 1801년 7월 6일과 13일 알헤시라스만에서 영국 함대와 교전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802년 1월에는 분함대를 지휘해 산토도밍고로 병력을 수송하는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인도양 원정과 포로 생활
1803년 12월, 보나파르트는 리누아에게 인도양 해군 사령관이라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그는 중국해까지 진출해 영국 상선들을 추격하고 나포했으며, 그의 활동은 인도양 항로의 영국 무역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귀항 도중 그는 카보베르데 연안에서 워런(Warren) 제독의 함대를 공격하는 무모한 결정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습니다. 영국은 제정이 몰락할 때까지 이 강력한 적수를 계속 억류했습니다.
말년과 평가
1810년 8월 나폴레옹은 그를 제국 백작으로 임명했습니다. 이후 루이 18세는 그를 과들루프 총독으로 임명했지만, 백일천하 기간 리누아가 나폴레옹에게 재차 충성을 맹세하자 영국군이 개입해 그의 항복을 강요했고, 그는 제2차 왕정복고 정부에 인도되었습니다.
1816년 3월 군사법원은 그를 무죄로 판결했으며, 곧바로 예역에 들어간 리누아는 1825년 명예 부제독으로 임명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는 1848년 베르사유에서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