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팔로 솔저(Buffalo Soldiers)'는 1866년 9월 21일 캔자스주 포트리븐워스(Fort Leavenworth)에서 창설된 미국 육군 제10기병연대에 처음 붙여진 별명입니다. 이후 이 명칭은 제9기병연대와 제24·25 보병연대까지 확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들 연대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연방군)을 위해 창설된 흑인 부대들의 후계자였습니다. 영화 《글로리(Glory)》로 잘 알려진 매사추세츠 제54보병연대 같은 자원연대와 미국 유색인종부대(United States Colored Troops) 산하의 수많은 부대가 대표적입니다.
버팔로 솔저는 미국 의회가 공식 인정한, 전원이 흑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미국 정규군 연대였습니다.
한편 최근 문화적 항의 운동 중 일부에서는 버팔로 솔저를 일부 백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자행한 학살의 도구로 보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생존 버팔로 솔저였던 마크 매슈스(Mark Matthews)는 2005년 9월 6일 11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이름의 유래
카이오와족(Kiowa)이 기병연대에 이 별명을 붙인 것은 캔자스 서부에서 벌어진 충돌 이후 느낀 경외심 때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 병사들의 머리카락이 들소(아메리카들소)의 갈기와 닮았다는 설
- 들소를 연상시키는 맹렬함, 힘, 끈기 같은 특성에서 따왔다는 설
- 겨울철에 들소 가죽을 몸에 두르고 다녔기 때문이라는 설
전투 기록
남북전쟁 당시 미국 정부는 백인 장교가 지휘하는 흑인 병사들로 구성된 '미국 유색인종부대'를 편성해 북군에 배속시켰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의회는 육군을 재편하면서 흑인 기병연대 2개(제9·10기병연대)와 흑인 보병연대 4개(제38·39·40·41 유색보병연대)의 창설을 승인했습니다. 이 가운데 제38연대와 제41연대는 1869년 4월 텍사스주 포트클라크에 주둔하는 제25보병연대로 통합되었습니다.
이 모든 부대는 흑인 사병과 백인 장교로 구성되었습니다. 벤저민 H. 그리어슨, 랄널드 S. 매켄지, 제임스 S. 브리스빈 같은 일부 백인 장교들은 흑인 부대를 아끼고 잘 대해준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헨리 O. 플리퍼(Henry O. Flipper)처럼 흑인 장교도 있었습니다. 그리어슨 대령은 포트리븐워스에서 제10기병연대를 창설했으며, 반면 흑인 병사들을 학대하기로 악명 높던 윌리엄 호프만 장군도 은퇴 전 포트리븐워스에 근무한 바 있습니다.
버팔로 솔저는 뛰어난 기수(騎手)로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1866년부터 1890년대 초까지 이들 연대는 미국 남서부와 대평원 지역의 여러 주둔지에서 복무했습니다. 이 시기 인디언 전쟁에 참전해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들 연대 출신 사병 13명과 장교 6명이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습니다. 군사 작전 외에도 버팔로 솔저는 도로 건설부터 우정청 호위 업무까지 변경 지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대체로 이들은 적대적인 원주민을 '치안 관리'하고, 멕시코 혁명가, 무법자(백인 산적), 코만체로(술과 총기를 밀거래하는 자), 소도둑(rustler)을 체포하는 데 동원되었다. 또한 지도 제작자 역할을 맡고 수백 마일에 달하는 전화선을 시공했으며, 군사 주둔지의 건물을 짓고 수리하면서 작은 마을이 도시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수많은 도로도 건설했습니다. 물론 원주민의 몰락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버팔로 솔저가 원주민과 싸운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자유를 얻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던 나라와 국민을 방어한 셈"입니다.
1890년대 인디언 전쟁이 종결된 후에도 연대는 계속 활동했습니다. 미서전쟁(스페인-미국 전쟁)에서는 쿠바 전선, 그중에서도 산후안 고지 전투에 참전해 명예훈장 5개를 추가로 받았습니다. 이후 1916년 멕시코 치벌 원정과 필리핀-미국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모두 20명이 넘는 버팔로 솔저가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상했습니다.
인종 차별의 그림자
버팔로 솔저는 주둔 지역에서 미군 내부든 민간인이든 인종차별의 희생자가 되곤 했고, 때로는 폭력 사태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1899년 리오그란데 시, 1906년 브라운즈빌(텍사스), 1917년 휴스턴(경찰관 5명이 사망한 폭동과 연관)에서 벌어진 인종 폭동에 버팔로 솔저 일부가 연루되기도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조직 단위로 참전하지 않았지만, 숙련된 부사관들이 제317공병대대 등 다른 흑인 전투 부대에 배치되어 활약했습니다.
20세기 초 버팔로 솔저는 전투 부대가 아닌 노동 및 근무 부대로 활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제9·10기병연대가 해체되고 병사들이 근무 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보병연대 중 하나인 제24보병연대는 태평양 전구에서 싸웠고, '버팔로 솔저 사단'이라 불린 제92보병사단은 유럽 전선의 아펜니노 산맥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한국전쟁과 군 통합
제24보병연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투를 치른 마지막 흑인 연대가 되었습니다. 이 연대는 1951년 해체되었고, 병사들은 한국에 있는 다른 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캔자스주 포트리븐워스에는 버팔로 솔저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992년 7월, 훗날 미국 합참의장이 되는 콜린 파월(Colin Powell)이 개소식 축사를 맡았습니다.
대중문화 속 버팔로 솔저
음악
밥 말리(Bob Marley)와 킹 스포티(King Sporty)가 함께 쓴 'Buffalo Soldier'는 1983년 앨범 《Confrontation》에 처음 수록된 대표곡입니다. 밥 말리를 비롯한 많은 자메이카인, 특히 라스타파리 신자들은 버팔로 솔저를 백인이 지배하는 길 위에서도 용기와 명예, 품위를 갖추고 싸워 나아간 흑인의 빛나는 본보기로 여겼습니다.
영화
1960년 존 포드 감독이 우디 스트로드와 제프리 헌터 주연으로 만든 《흑인 중사(Sergeant Rutledge)》는 미국 군사 역사를 다룬 작품입니다.
2001년 개봉한 《버팔로 솔저》는 로버트 오코너의 1992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냉전기 독일에 주둔한 (백인) 미군 병사들이 암시장 거래에 가담하는 이야기를 그려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2008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산타나의 기적(Miracle at St. Anna)》은 1944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독일군 진영에 포위된 버팔로 솔저 4인 조의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 역시 논란에 휩싸여 감독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참고 문헌
Billington, Monroe L. 『New Mexico's Buffalo Soldiers, 1866-1900』. University Press of Colorado, 1991.
Cashin, Herschel V. et al. 『Under Fire with the Tenth U.S. Cavalry』. Arno & New York Times, 1969.
Churchill, Ward. 『A Little Matter of Genocide: Holocaust and Denial in the Americas, 1492 to the Present』. City Lights Books, 1997.
Kenner, Charles L. 『Buffalo Soldiers and the Officers of the Ninth Cavalry, 1867-1898: Black and White Together』.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9.
Leckie, William H. 『The Buffalo Soldiers: A Narrative of the Negro Cavalry in the West』.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67.
Schubert, Frank N. 『Black Valor: Buffalo Soldiers and the Medal of Honor』. Scholarly Resources Inc.,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