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붉은 베레모의 전사들, 스페인 내전 프랑코의 엘리트 부대 '레케테'

스페인 내전에서 국민파 진영의 정예로 이름을 날린 '레케테(Requetés)'는 나바라 지방 출신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전사의 전통을 등에 업고, 특유의 붉은 베레모를 상징으로 삼아 프랑코 휘하에서 가장 용맹하기로 손꼽히는 부대로 성장했다.

붉은 베레모의 전사들, 스페인 내전 프랑코의 엘리트 부대  레케테

'레케테'라는 이름의 유래

'레케트(requet)'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냥 나팔 소리(hunting call)'를 뜻한다. 여기서 파생된 '레케테'는 곧 '사냥꾼들'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말 그대로 사냥꾼 출신이었던 이들은 중세 시대부터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뛰어난 전투력을 인정받았으며, 중세 나바라인들이 조직한 악명 높은 용병 부대 역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카를로스 전쟁과 보수적 전통

레케테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쌓은 것은 스페인 카를로스 전쟁(1833~1840, 1847~1849, 1872~1876) 시기였다. 이들은 당시 스페인을 다스리던 부르봉 왕조에 맞서 싸운 전통을 지녔다. 나바라는 스페인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방 가운데 하나로, 주민들은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고 좌파 세력의 부상을 결코 반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나바라 주민들은 일사불란하게 국민파 진영에 합류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냥에 익숙했던 만큼 대부분 무기 사용에 능숙했다. 붉은 베레모를 쓴 그들은 자체적으로 연대와 사단을 편성했으며, 그 목표는 공화파(적색파)의 격퇴를 넘어 스페인에 군주제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프랑코 본인은 왕정 복귀에는 결호를 표했다.

부대 편제와 전력 변화

레케테 연대는 '테르시오(tercio)'라 불렸으며, 다른 국민파 부대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각 연대는 보통 3개 대대로 구성되었고, 각 대대는 3개 소총중대와 1개 기관총중대를 두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전차포도 배치되었는데, 대개 연대당 1문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1개 보병사단만 편성되었지만, 1939년까지 총 4개 사단(제1·제2·제3·제5 사단)이 창설되었다. 각 사단은 2개 여단을 예속했고, 여단은 2개 연대와 1개 포병연대로 이루어졌다.

전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바라 사단'으로 통칭된 이 4개 사단은 총 4만 2천 명을 운용했다. 그러나 국민파 사령부가 이들을 선봉 돌격 부대로 활용하는 바람에 막대한 희생을 치렀고, 종전 무렵에는 전력이 2만 3천 명까지 감소했다.

프랑코의 정예로 우뚝 서다

레케테는 여러 국민파 민병대 중 하나로 출발했으나, 종교적 신념과 열정으로 무장한 전사들이 집결해 있었기에 전쟁 내내 프랑코군의 핵심 정예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주로 북방군과 중앙군 소속으로 작전했으며, 이후에는 동부지방군에서도 활약했다. 1938년 아라곤 대공세에서는 공화파 통제 구역을 남북으로 가르며 처음으로 지중해 연안에 도달한 부대가 되었고, 북부 스페인과 바스크 지역 정복 과정에서도 그 공헌이 특히 컸다.

무장과 장비

레케테는 스페인군의 카키색 군복을 입었다. 많은 경우 어깨에는 성 안드레아의 적십자 문양이 들어간 작은 휘장을 달았다. 기본 소총은 마우저 M1893이었으며, 마우저 M1895 총검이 함께 사용되었다. 탄약 장구는 프랑스제 모델을 본떠 만든 스페인식 가죽 장비로, 앞쪽에 2개, 뒤쪽에 1개의 탄창 주머니가 달린 밝은 갈색 제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