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부르주아지: 19세기 프랑스를 지배한 신흥 부자 계층의 등장

부르주아지: 19세기 프랑스를 지배한 신흥 부자 계층의 등장
마네, 철도(The Railway)

부르주아지란 누구인가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계급이다. 19세기는 바로 이 부르주아지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부르주아지'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에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상류 부르주아, 중상류, 중산층, 소부르주아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중간 혹은 그 이상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들은 당시 프랑스와 그 주변 지역에 살던 인구 대다수에 비해 일정 수준의 교양과 월등히 높은 경제력을 갖춘 집단이었다.

부르주아지는 주로 도시에 거주했다. 이 계급에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은행가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업가 가문들, 기업인, 의사, 변호사는 물론 문학계에서 활동하던 젊은이들까지 포함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정치 무대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점차 권력을 장악해 나갔고, 일부 부르주아는 실제로 시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경제 발전은 지식과 전문성을 판매하는 직업들을 더욱 늘려 갔고,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도시 부르주아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부를 불려 갔다.

19세기의 스타일을 만든 계급

부르주아지는 자신들만의 스타일, 관습, 취향으로 19세기 전체에 낙인을 찍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문화와 생활 양식은 당대 사회의 표준이 되었고, 예술과 일상의 모습을 크게 좌우했다.

노동자 계급과의 대립, 계급 투쟁의 시작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필연적으로 노동자 계급과 마주해야 했다. 부르주아지가 자본을 소유했다면, 노동자 계급은 노동력을 소유했다. 이것이 바로 계급 투쟁의 핵심이었다. 부르주아지는 빈곤, 질병, 악덕, 알코올 중독, 걸식, 범죄와 같은 사회 병리의 원인을 노동자 계급에게 돌렸다. 그들의 눈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질서와 파괴, 혼돈, 그리고 죽음을 몰고 올 위험 그 자체였다.

주거 환경에서 이 격차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부르주아들이 넉넉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비위생적인 다층 주택에 빼곡히 들어차 살아야 했다. 이처럼 19세기 프랑스 사회는 부르주아지의 번영과 노동자 계급의 고난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