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군은 영국령 인도(브리티시 라지) 시대에 인도를 방어하고 질서를 유지하던 정규 무력이었다.
1903년부터 1947년까지 인도에 주둔한 병력은 성격이 뚜렷이 다른 두 개 조직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현지 출신 연대들로 구성된 '인도군'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도에 배치된 영국 본토 연대들로 이루어진 '주인도 영국군(British Army in India)'이었다.
인도군은 우선 인도 자체의 안보와 치안 유지 임무를 담당했지만, 국경 밖에서도 활약했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수많은 병력을 해외 전선에 파견했다.
기원
1858년 세포이 항쟁(인도 대반란) 이후 인도는 영국 왕실의 직접 통치 아래 놓이며 '영국령 인도'가 되었다. 당시 추진된 수많은 개혁 가운데에는 군제 개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무렵의 인도군에는 인도인 부대(유명한 구르카 부대 포함)와 영국인 부대가 함께 속해 있었으며, 전체는 세 개 사령부로 구분되었다.
- 벵골군
- 마드라스군
- 봄베이군
이 부대들은 1903~1904년 티베트 원정에도 참여했다.
20세기 초, 호레이쇼 허버트 키치너는 이 세 개 군을 하나로 통합하고 병력을 두 개의 독립된 체계로 재편했다.
- 인도인 병사와 영국인 장교로 구성된 '인도군'
- 영국 본국에서 온 부대로 구성된 '영국군' — 약 20년 후 '주인도 영국군'으로 명칭이 변경됨
이러한 이원 체제는 1947년 군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영국 부대와 인도 부대는 하나의 지휘 구조 아래 통합 운용되었으며, 군 전체는 남·북으로 나뉘어 9개 보병사단과 8개 기병여단을 보유했다.
키치너의 통합 이후 인도군의 규모는 보병 141,890명, 기병 24,854명, 포병 3,104명이었고, 주인도 영국군은 보병 77,075명, 기병 6,065명, 포병 17,140명을 확보하고 있었다.
경장비의 상당수는 인도 내 조병창(Indian Ordnance Factories)에서 자체 생산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1914~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은 키치너가 지휘하는 인도군을 프랑스에 상륙시켜 연합군과 함께 싸우게 했으며, 이 부대들은 특히 1915년 플랑드르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다. 인도 부대는 1914년 9월 26일 마르세유에 상륙했고, 9월 30일 기차로 툴루즈를 경유해 오를레앙으로 이동하여 세르코트(Cercottes) 캠프에서 몇 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았다. 10월 말에 이들은 북부 전선, 포퀴사르(Fauquissart)부터 지방시-레-라바세(Givenchy-lès-la-Bassée)에 이르는 구역에 배치되었다.
프랑스에 파견된 병력은 여러 개 부대로 나뉘어 운용되었다.
A군(Force A)은 영국 원정군(BEF)에 배속되었다. A군은 인도에서 도착한 부대로 1914년 9월 30일 마르세유에 상륙했으며, 4개 사단으로 구성되어 인도군단(Indian Army Corps)으로 편성되었다. 즉 보병 2개 사단과, 기병 2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인도 기병군단이 함께 속했다. 지휘관은 제임스 윌콕스(James Willcocks)였으며, 라호르 군단은 라바세 전투의 선봉에 섰다. A군은 1915년 10월 해산되고 보병은 이집트로 보내졌는데, 병사들의 언어에 능통하고 그들에게 익숙한 장교들을 잃은 충격은 혹한만큼이나 컸다고 전해진다. A군은 연대급 포병이 없었고 신식 장비에 대한 훈련도 크게 부족했다.
프랑스에는 기병 2개 사단만 남았다. 이들은 영국군을 지원하며 하마 전투에도 투입되었고, 1918년 3월 이집트로 철수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싸운 인도인 병사는 13만 명을 넘었으며, 그중 9,000명 이상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아시아 전역에서 싸운 병력은 동남아시아 사령부(South East Asia Command)의 지휘를 받았다. 한편 많은 부대가 북아프리카의 사막 전역, 이란에 대한 영소 침공을 비롯한 중동 작전, 그리고 이탈리아 전역에도 참전했다.
유럽에서 포로가 된 많은 인도인 병사들은 독일의 무장친위대 '자유 인도 군단(SS Freies Indien Legion)', 이탈리아의 '아자드 힌두스탄 대대', 일본의 '인도 국민군(Indian National Army)'에 각각 모집되어, 수바스 찬드라 보스와 같은 독립운동가의 깃발 아래 추축국 편에서 싸웠다. 종전 후인 1945년 11월부터 1946년 5월까지 델리의 레드포트(붉은 요새)에서는 인도 국민군 장교들을 '국왕-황제에 대한 전쟁' 혐의로 재판하는 소위 '레드포트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은 민중의 분노와 인도군, 특히 해군의 반란을 촉발했으며, 인도 독립 과정을 앞당긴 것으로 평가된다.
인도 분할과 함께 이 군대는 두 개의 새로운 국군, 즉 인도군과 파키스탄군으로 나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