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잔해를 콩코드 광장에 쌓으면 70미터 언덕? 파리 지하철 탄생의 기록

헤라클레스의 노동이 시작되다

마치 헤라클레스의 과업처럼 거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2천 명의 토목 인부들이 낮과 밤으로 교대 근무를 하며 방센-마요(Vincennes–Maillot) 구간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매일 1,000세제곱미터에 달하는 흙과 잔해를 운반해야 했다. 1905년의 한 계산에 따르면, 이 잔해를 콩코드 광장 전체 면적에 고르게 쌓아 올리면 무려 높이 70미터에 이르는 언덕이 된다고 한다!

터널 공사의 진행

인부들이 땅을 파 내려가는 동안 참호는 판재 거푸집으로 받쳐 무너짐을 방지했다. 이어서 터널의 천장 부분인 아치 볼트는 벽돌과 석재를 쌓아 올리는 조벽 방식으로 시공되었다.

1899년 12월, 대형 붕괴 사고

그러나 공사 도중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1899년 12월, 프리드란 대로(Avenue Friedland)와 샹젤리제 거리 사이 구간에서 지반 붕괴가 발생한 것이다.

균열은 길이 50미터, 폭 15미터에 달했고, 도로 바닥이 15미터나 함몰되면서 주변의 나무와 가스등까지 함께 끌려 내려갔다. 지나가던 행인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인부들은 붕괴의 전조를 미리 감지하고 대피한 덕분에 큰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개통을 앞두고 커진 우려

노선은 1900년 만국박람회에 맞춰 7월에 개통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소심한 시민들에게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일부 기자들은 터널 안의 연기 때문에 승객들이 질식할 것이라며 진지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소매치기나 불량배들의 추행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했다. 물론 트램 회사의 주주들과 마차 임대 업자들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에 분노를 터뜨렸다. 그들은 파리의 새로운 교통수단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하고 나섰다.

1900년 7월 19일, 메트로의 첫날

1900년 7월 19일. 파리의 기온은 그늘에서 38도를 기록할 만큼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그렇다면 메트로폴리탄 터널 속에는 얼마나 상쾌한 서늘함이 흐르고 있었을까?

역사에 남을 이날, 마요(Porte Maillot) 역이 일반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원래 공사는 7월 14일 국경일까지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경찰청장 레핑(Lépine)이 그날 열릴 축하 행사와 시위를 우려하여 5일의 유예 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18일에는 공공사업부 장관과 세느 현지사 등 유력 인사들이 참여한 대표단이 마요 역에서 방센(Vincennes)까지 전 구간을 직접 이동하며 노선 개통식을 거행했다. 이로써 파리 메트ropolitain의 첫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