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 아미앵(Amiens) 근처에는 지하 33미터 깊이에 조성된 거대한 지하 도시 '나우르스(Naours)'가 있습니다. 이곳은 10세기에 건설되어 수백 년간 주민들의 피난처로 쓰이다 1887년 재발견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군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왜 지하 도시를 만들어야 했는가
중세 이후 프랑스 북부 지역은 끊임없는 전쟁과 분쟁을 겪었습니다. 현재 약 1,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나우르스 마을의 주민들은 군대가 지나갈 때마다 땅이 황폐화되고 식량이 약탈당해 마을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을 반복적으로 목격했습니다.
이에 10세기 어느 시점부터 주민들은 위기 상황에서 가족과 가축, 곡물을 숨길 수 있는 피난처를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처음에는 땅에 낸 작은 구멍에서 시작했지만,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굴착 범위는 근처 언덕 아래와 지하 33미터 깊이의 회랑까지 확장되었습니다.
3,000명을 수용한 거대 규모의 지하 도시
17세기 무렵 이 지하 도시에는 이미 28개의 회랑과 300개가 넘는 방이 존재했습니다. 천장 높이는 1.6~2미터였으며, 3,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주민들은 교차로마다 광장을 만들고 3개의 예배당, 마구간, 운하와 우물, 환기구, 그리고 부엌과 빵 오븐의 연기를 배출하기 위한 굴뚝까지 건설했습니다.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지하 마을이었던 셈입니다.
벽에 새겨진 기록이 말해주는 점령의 역사
이곳이 정기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오랜 기간 점유되었다는 사실은 벽면 곳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비문으로 확인됩니다. 기록된 날짜는 1340년부터 1792년까지 이어지며, 특히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7세기에 점령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1887년, 에르네스트 다니쿠르 신부의 재발견
1887년 12월 15일, 에르네스트 다니쿠르(Ernest Danicourt) 신부가 이 지하 도시를 재발견합니다. 그는 평생을 이곳의 탐사·조사·복원에 바쳤으며, 발굴 과정에서 당시 거주자들이 사용한 일상 용품과 도구, 인골과 동물의 뼈, 수많은 동전, 이노케라무스(Inoceramus) 화석(굴과 유사한 멸종된 이매패류), 그리고 금화 20점으로 이루어진 보물까지 찾아냈습니다.
그의 조사 결과, 이 지하 도시는 루이 16세 시대인 18세기 말에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금에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려던 밀수업자들이 이곳에 물품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다시 쓰인 지하 도시의 역사
이후 동굴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잊혀져 있었습니다.
- 제1차 세계 대전: 영국군이 탄약과 연료 저장고로 활용했으며, 이 시기에 남겨진 낙서는 현재 알려진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낙서 집적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제2차 세계 대전: 1941년 나치 독일군이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고, 1943년에는 대서양 방벽(Atlantic Wall)의 일부로 석재를 이용해 벽을 보강했습니다.
연합군의 진격과 함께 독일군이 퇴각할 때, 동굴 내부에서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이 반출되었습니다. 다니쿠르가 수집해 두었던 소장품도 이때 사라졌으며, 그 이후 행방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나우르스: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관광 명소
1949년부터 지하 도시 나우르스는 일반에 공개되어 누구나 방문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작은 박물관과 레스토랑, 피크닉 장소, 놀이터를 갖춘 이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