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도시는 지하철을 원했다 – 파리 메트로 탄생 비화

국가와 도시, 철도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

1884년, 프랑스 국참사원은 파리 광역철도, 이른바 '메트로폴리탱'을 일반 이익에 부합하는 철도로 분류하고 그 사업권을 국가가 직접 부여하기로 결정합니다. 국영 기업을 우대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리 시는 격렬히 항의했습니다. 도시의 오랜 숙원이었던 철도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파리가 원한 것은 남의 손에 맡겨진 철도가 아니라, 시가 직접 품고 가꿀 수 있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자신만의 메트로였습니다.

이 팽팽한 대립은 1895년에야 막을 내립니다. 공공사업부 장관 루이 바르투(Louis Barthou)가 메트로폴리탱 노선을 '지방 이익 철도'로 분류하고, 그 건설을 파리 시에 위임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6개 노선, 총연장 65km의 청사진

2년 후 시의회는 구체적인 건설 계획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총연장 65킬로미터에 달하는 6개 노선으로 구성된 지하철망을 만든다는 내용이었고, 이윽고 법률로써 이 철도의 공익성이 정식으로 선포되었습니다. 모든 공사는 브르타뉴 출신 엔지니어 풀장스 비앙브뉘(Fulgence Bienvenüe)에게 일임되었습니다.

한쪽 팔을 잃고도 웃던 사람, 비앙브뉘

1852년 코트드노르 지방의 위젤(Uzel)에서 태어난 비앙브뉘는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를 졸업한 후 교량·도로 분야의 명문 과정인 '퐁 에 샤우세(Ponts et Chaussées)'까지 수료한 엘리트 기술자였습니다. 브르타뉴 지역 철도 건설 현장에서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관들의 주목을 받으며 유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한때 겪은 심각한 작업 사고로 한쪽 팔의 기능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개의치 않는 듯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도시는 지하철을 원했다 – 파리 메트로 탄생 비화

"내 왼팔은 가져갔지요."라고 말입니다.

프랑스 각지에서 방대한 실무 경험을 쌓아온 그는 마침내 미래의 메트로 설계 검토라는 중책을 맡게 됩니다. 선배 기술자들이 남겨둔 설계안을 적극 참고한 끝에 1896년 파리 시에 새로운 계획안을 제출했고, 이 안은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이듬해 최종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로 불릴 파리 메트로의 역사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