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의 시작
1985년 3월 11일, 콘스탄틴 체르넨코의 서거 이후 불과 54세의 젊은 나이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지도자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라는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세계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군축을 향한 첫걸음: 새로운 데탕트
고르바초프는 소련 경제를 파탄 직전으로 몰아넣은 냉전에서 국가를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국민총생산(GNP)의 약 16%를 군비에 쏟아붓고 있었는데, 이는 미국의 6.5%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었습니다(M. 바이스, 2004).
레이캬비크 회담(1986)
1986년 10월 11일과 12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은 1979년 이후 끊겼던 미소 간 대화를 재개시킨 '새로운 데탕트(긴장 완화)'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전략방위구상(SDI) 포기를 거부해 완전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전략무기 감축에 대한 합의가 거의 성사될 뻔했으며, 고르바초프는 핵무기가 없는 중립화된 '유럽 공동의 집(Common European House)'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제로 옵션': 최초의 실질적 군축 조약
그 결실은 1987년 12월 8일 워싱턴에서 맺어졌습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3년 안에 유럽 내 모든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른바 '제로 옵션'으로 불리는 이 조약은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군축 조약이었습니다.
- 양대 강국의 핵미사일이 유럽 대륙에서 철수되었습니다.
- 1980년대 초반을 뒤흔든 '유로미사일 위기'가 종식되었습니다.
- 실제 사라진 핵탄두는 4%에 불과했지만, 끝없이 반복되던 군비 경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컸습니다.
벨벳 혁명과 동유럽 공산체제의 종언 (1988~1990)
1988년 12월 7일, 고르바초프는 UN 연단에서 동독,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주둔 소련군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제한 주권론'(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종식을 의미했으며, 소련이 동유럽 문제에서 손을 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연설은 이른바 벨벳 혁명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동유럽 여러 나라는 1988년부터 1990년 사이 새로운 헌법 제정을 통해 거의 충돌이나 유혈 사태 없이 공산 일당 독재에서 복수 정당 민주주의 체제로 평화롭게 이행했습니다.
- 동독: 1989년 여름부터 주민들이 헝가리를 경유해 서독으로 행선지를 바꾸며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국민들의 거센 압력 속에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이듬해인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자의적 통치는 1989년 12월 26일 마지막으로 붕괴했으며, 그는 아내와 함께 처형당하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평화적 변화를 이끈 공로로 고르바초프는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주변부 분쟁의 해결
소련의 후퇴와 공산주의 위협의 소멸과 함께 전 세계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여러 지역 분쟁도 차츰 해결의 기미를 보였습니다.
-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했습니다(1989년 9월 29일).
- 쿠바군이 앙골라와 니카라과에서 물러났습니다.
- 미국이 '공산주의에 맞는 방파제'로 지원하던 라틴아메리카의 군사 독재들이 잇달아 무너졌습니다. 아르헨티나(1984), 브라질(1985), 칠레(1989), 파라과이(1989)가 그 예입니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990년 2월 12일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었고, 이것이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의 종식으로 이어졌습니다.
-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소련군이 철수했지만(1988~1989), 이후에도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강경파 이슬람 세력과 마수드 사령관이 이끄는 온건파 이슬람 세력 간의 내전이 계속되었습니다.
중동에는 희망이 있었나?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당시 서방은 공개적으로는 이라크에 무기를 공급하면서도 비밀리에 이란에도 판매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고, 소련 역시 양측을 모두 지원했습니다. 1988년 8월 20일, UN의 중재로 명확한 승자 없이 휴전이 성립되었습니다.
한편 레바논에서는 타이프 협정으로 인해 국가가 사실상 시리아의 통제 아래 놓였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는 제1차 인티파다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비밀리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오슬로 평화 프로세스의 토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