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바비" 이번 브라운(Robert "Bobby" Evan Brown)은 남다른 경력의 장교였습니다. 1903년에 태어난 그는 1918년, 겨우 15세의 나이에 나이를 18살로 속여 군에 입대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실전에 참전하지 못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진정한 영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노르망디에서 아헨까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당시 브라운은 제2기갑사단에서 복무 중이었습니다. 1943년 소위로 진급하여 제1보병사단에 배속되었고, 미군의 모든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으며 육군 대표팀에서 활약할 만큼 뛰어난 권투 실력을 갖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그는 오마하 해변에 C중대 소속 소대장으로 상륙했습니다. 중대장이 전사하자 지휘를 이어받았고, 이후 독일 본토 진격 작전 내내 C중대를 지휘했습니다.
십자가의 언덕
1944년 10월 8일, 아헨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시 포위 작전에는 하나의 심각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바로 언덕 239, 정상에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하여 '십자가의 언덕'이라 불리던 곳입니다.
언덕 공격은 제1보병사단 18보병연대가 담당했으며, 제1대대(I/18)가 첫 번째 선봉에 섰습니다. 대대의 최전선에는 당시 대위로 진급한 브라운의 C중대가 있었습니다.
1944년 10월 8일 새벽 4시, 중대는 이동을 개시했습니다. 독일군은 언덕 위에 최소 43정의 기관총과 포병 화력을 배치해 두었기 때문에, 이 임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브라운의 중대는 17, 18, 19, 20, 26, 29, 30번 총안소를 차례로 함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홀로 기관총 진지를 향해
공습에 이어 브라운은 중대를 이끌고 언덕 기슭의 묘지까지 전진했습니다. 중대는 18번 총안소 앞 대전차 참호에 몸을 숨겼지만, 그곳에서 강한 사격에 발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그때 브라운은 1소대 하사에게 외쳤습니다. "화염방사기 두 개와 폭약 좀 가져와." 그는 화망을 구성하도록 지시한 뒤, 폭약 한 개를 들고 기관총 진지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폭격으로 생긴 크레이터를 이용해 조용히 접근한 그는 폭약을 진지 안에 던져 넣었습니다. 기관총은 높이 치솟는 화염과 함께 연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브라운은 즉시 부대 위치로 돌아와 두 번째 폭약과 방갈로 어뢰(Bangalore torpedo)를 챙겼습니다. 이미 파괴된 18번 기관총 진지를 지난 뒤, 독일군 기관총이 그를 발견하고 집중 사격을 퍼붓는 가운데 35미터를 더 전진해 19번 기관총 진지에 도달했습니다.
박격포탄이 곁에서 연이어 터지면서 그는 땅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근접에 성공한 그는 방갈로 어뢰로 진지 벽에 구멍을 뚫고, 그 틈으로 폭약을 밀어 넣어 진지째 공중으로 날려 버렸습니다.
88mm 포와 강철 문
다시 부대로 돌아온 브라운은 무릎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곁의 하사가 외쳤습니다. "장교님, 수통에 총알 구멍이 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상당한 몸으로 브라운은 폭약을 보충한 뒤 20번 진지를 향해 다시 출발했습니다. 이 요새에는 88mm 포와 최소 6정의 기관총이 배치되어 있었고, 45명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었으며 벽 두께는 1.8미터에 달하는 견고한 구조물이었습니다.
통신 참호를 따라 파괴된 19번 기관총에서 20번 요새까지 20미터를 이동하던 그에게 결정적인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탄약을 운반하던 독일군 병사가 요새로 다가왔고, 그를 들여보내기 위해 내부의 병력들이 강철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브라운은 이 기회를 단숨에 잡았습니다. 순식간에 폭약 두 개를 열린 문 안으로 던져 넣었고, 요새는 그 안에 있던 모든 독일군과 함께 완전히 분쇄되었습니다.
영웅의 영광, 그리고 불명예스러운 최후
20번 진지의 파괴는 제1대대가 십자가의 언덕을 점령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동료들은 브라운이 만든 돌파구를 통해 언덕을 장악했습니다. 그 자신도 부상에도 불구하고 언덕이 완전히 점령될 때까지 후송을 거부했습니다. 독일군은 두 개 연대 규모의 병력으로 반격해 언덕을 되찾으려 했지만 격퇴당했습니다.
얼마 후 브라운은 아헨 지역에서 다시 부상을 입었고, 이번에는 매우 심각하여 수개월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전쟁의 마지막 시기에 체코슬로바키아 전선으로 복귀해 다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브라운은 미국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수여받았습니다.
1952년 대위 계급으로 예역한 그는 총 13곳에 달하는 부상의 후유증으로 이후 2년간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생계를 꾸릴 직업을 구하지 못한 그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관리인 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남긴 심리적 상처는 그를 끝내 회복시키지 못했고, 1971년 11월 8일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