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휴전 협정
1918년 11월 11일 오전 5시 15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휴전 협정이 서명되면서 전투는 막을 내리고 독일의 항복이 확정되었습니다. 휴전은 같은 날 오전 11시부로 발효되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 전역에서 종소리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800만 명이 넘는 전사자와 600만 명의 부상자·상이군인을 남긴 비극적인 전쟁이 마침내 끝난 것입니다.
독일과 연합국의 장성급 장교들은 콩피에뉴(Compiègne) 숲의 레톤드(Rethondes) 숲속 공터에 마련된 회담장, 즉 포슈(Foch) 장군의 특별 열차에 편성된 식당 객차에서 만났습니다.
연대기
1918년 6월과 7월 독일군의 공세가 실패한 이후,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증원은 독일에게 승리의 희망을 완전히 앗아갔습니다. 여기에 베를린에서 일어난 노동자 혁명까지 겹치면서 독일은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10월 내내 독일과 미국의 윌슨 대통령 사이에서는 외교 문서가 오갔으며, 윌슨 대통령은 1월의 유명한 연설에서 제시했던 '14개조 평화 원칙'에 따라 강화 협상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1918년 10월 3일, 빌헬름 2세 황제는 바덴 공자 막스(Max von Baden)를 새 수상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국가를 통제하기에 역부족이었고, 특히 킬(Kiel) 항구를 중심으로 수많은 해군 병사와 군인들이 전투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11월 7일, 독일 참모총장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는 포슈에게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다섯 대의 차량은 호위를 받으며 프랑스 북부의 황폐한 지대를 가로질러, 그때까지 비밀에 부쳐져 있던 회담 장소로 향했습니다. 사흘간의 회담에서 독일 대표단에게 진정한 협상의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출된 문서에 담긴 조건들을 신속히 수용해야만 했습니다. 이 문서는 연합국 최고사령관 포슈가 윌슨, 클레망소, 올란도, 로이드 조지 등 엇갈린 입장을 한 달간 조율한 끝에 마지막으로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11월 9일, 바덴 공자는 황제에게 퇴위를 권고했고,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콩피에뉴의 객차에 모인 독일 대표단에게 중요한 압박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다음 날인 11월 10일, 독일의 새 정부 수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는 군 수뇌부와 협약을 맺고, 레톤드에 있는 자국 대표에게 협상을 지체 없이 마무리할 것을 타전했습니다.
1918년 11월 11일, 휴전 협정이 36일간의 유효 기간을 조건으로 서명되었습니다. 이 휴전에 이어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후 질서가 본격적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추모와 기념
1920년 11월 11일,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병사들에게 경의를 표하자는 아이디어가 실현되었습니다. 베르됭(Verdun) 출신 병사의 유해가 파리 개선문 아래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1923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은 추모의 불꽃이 밝혀지면서 무명 용사의 무덤은 강력한 상징적·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11월 11일은 프랑스(1922년 10월 24일 법률에 따라 지정된 현충일), 벨기에, 캐나다의 공휴일입니다.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이 기념일이 모든 참전 용사를 기리는 날로 확대되었습니다.
참석자
연합국 측 군 대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페르디낭 포슈(Ferdinand Foch) 장군 — 연합국 최고사령관
- 로슬린 웨미스(Rosslyn Wemyss) 제독 — 영국 대표
- 웨이강(Weygand) 장군 — 포슈의 참모총장
독일 측에서는 민간인 전권대표가 군사 고문들의 보좌를 받았습니다.
-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Matthias Erzberger) — 독일 정부 대표
- 알프레트 폰 오버른도르프 백작(Alfred von Oberndorff) — 독일 외무부 대표
- 데틀로프 폰 빈터펠트(Detlof von Winterfeldt) 장군 — 독일 육군
- 폰 그뤼넬(von Gruennel) 장군 — 독일 육군
- 에른스트 반젤로(Ernst Vanselow) 대위 — 독일 해군
휴전 협정의 주요 조항
A) 서부 전선
- I) 육·공중 적대 행위의 중지 — 휴전 서명 후 6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발효.
- II) 점령지의 즉각 철수 —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그리고 알자스로렌 지역에서 휴전 서명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완료되도록 규정. [...]
- IV) 독일군이 양호한 상태의 군사 물자를 반납. [...]
- VI) 적군이 철수하는 모든 영토에서 주민의 이주를 금지하고, 주민의 신체와 재산에 어떠한 손해나 피해도 가하지 말 것. 휴전 서명 이전의 전쟁 관련 행위를 이유로 누구도 기소하지 않으며, 어떠한 종류의 파괴 행위도 금지. [...]
- VII) 연합국에 인도할 물자: 정상 작동 가능한 기관차 5,000량과 화차 150,000량 [...], 양호한 상태의 자동 트럭 5,000대. [...]
B) 독일 동부 국경에 관한 조치
- XII) 현재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루마니아, 터키 영토였던 지역에 있는 모든 독일군은 즉시 1914년 8월 1일 당시의 독일 국경선으로 복귀해야 함. 또한 구 러시아 영토였던 지역에 있는 독일군 역시, 연합국이 해당 지역의 내부 상황을 고려해 시기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위와 같이 정의된 독일 국경으로 복귀해야 함. [...]
C) 동아프리카
- XVII) 동아프리카에서 활동 중인 모든 독일군의 철수 — 연합국이 정한 기한 내에 이행. [...]
F) 해군 조항
- XXII) 모든 잠수함을 연합국 및 미국에 인도. [...]
G) 휴전 기간
- XXXIV) 휴전 기간은 36일로 하며, 연장 옵션을 둠.
(*) 당시 회담에 사용된 그 객차는 현재 박물관 소장품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