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5열'의 탄생: 스페인 내전을 뒤흔든 첩자와 사보타주

잠입 첩자 앙리 뒤프레

프랑스인 앙리 뒤프레(Henri Dupré)의 사례는 더욱 기이하다. 무솔리니의 자금 지원을 받던 극우 비밀결사 '카굴(Cagoule)'의 일원이었던 그는 스페인 내전 발발과 함께 여러 동료들과 공산당에 입당해 알바세테로 향했다.

깐깐한 사람인 척 연기하며 그는 마르티(Marty)의 극심한 불신마저 속여내고 제11여단 병참 책임자라는 요직을 차지한다. 그는 1937년 말까지 그 자리에 있었고 단 한 번도 의심받지 않았다. 1942년 저술한 책에서 그는 자신의 '공적'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회상했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장비를 파괴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꺾었으며, 탈영을 부추겼다. 나는 가장 무능한 자들을 가장 중요한 직책에 앉혔다. 트럭과 기관총은 숫돌가루로 교묘히 망가뜨렸고, 그런 다음에는 내 스스로 큰 소리로 배신을 규탄하며 의심을 피했다."

독일 점령기에는 게슈타포 요원으로 변신했던 뒤프레는 결국 1946년 처형되었다.

반군 진영에서도 벌어진 사보타주

파괴 공작은 반군 진영에서도 만연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만들어진 반군의 포탄이 폭발하지 않은 채 떨어지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때로는 국제여단 대원들이 이런 쪽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당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예요. 적어도 지금은요. 안녕, 행운을 빌어!"

'제5열'이라는 말의 탄생

공화파 진영에서는 반역 행위와 적진 투항 — 어느 내전에서나 불가피한 일이지만 — 이 간첩에 대한 공포증을 낳았다. 바로 스페인에서 '제5열(fifth column)'이라는 표현이 탄생했다.

프랑코파의 몰라(Mola) 장군에게 네 개의 열 중 어느 것이 먼저 마드리드에 입성하겠느냐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 그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다섯 번째 열입니다." 수도에 잠복해 있던 요원들과 동조자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확산된 공포증과 숙청

전세가 프랑코 쪽으로 기울면서 이 공포증은 더욱 확산되었다. 국제여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즉결 처형들이 있었다. 일부는 정당한 조치였지만, 다른 일부는 경쟁 세력 간의 정치적 청산에 불과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 혹은 그렇게 의심받는 이들을 가차없이 몰아붙였다. 모스크바에서는 대숙청의 시대가 한창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