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리도르(Jean Maridor, 1920년 11월 24일 ~ 1944년 8월 3일)는 프랑스의 군인 출신 비행사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자유 프랑스 공군과 영국 왕립공군(RAF)에서 활약한 에이스 조종사입니다. 그는 프랑스 르아브르 교외 그라빌에서 태어나, 영국 켄트주 베넨덴 상공에서 V1 비행폭탄을 저지하다가 산화했습니다.

유년 시절과 조종사의 꿈
마리도르는 어린 시절부터 항공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이발소에서 견습 생활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에어로클럽에서 비행 훈련을 이어갔고, 불과 16세에 B 면허를 취득했으며, 2년 후에는 A 면허까지 따냈습니다.
1939년 5월, 그는 이스트르 공군기지에서 프랑스 공군에 입대했고, 같은 해 9월 말 군 조종사 자격인 소위 날개를 획득했습니다. 이후 1940년 3월부터 드보아틴 D.520 전투기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940년 6월 하사 조종사 계급으로 실전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는 이미 독일과의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직후였습니다. 배치된 지 단 48시간 만에 그는 휴전에 따른 명령으로 자신의 기체를 불태워 파괴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조국을 잃은 그는 프랑스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생장드뤼즈 항구에서 폴란드군 병력을 가득 실은 아란도라 스타호에 올라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영국 왕립공군(RAF)에서의 경력
자유 프랑스 공군(Forces Aériennes Françaises Libres)에 입대한 마리도르는 서튼브리지의 RAF 훈련소에서 재교육을 받은 뒤 제615비행중대로 배속되었습니다. 허리케인 II 전투기를 몰던 1941년 10월 14일, 그는 오스텐드 인근 상공에서 다른 조종사와 협동으로 He 59기를 격추하며 첫 공중전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1942년 2월 소위(Pilot Officer)로 진급한 그는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운용하는 제91비행중대로 옮겨 적 선박 공격을 전문으로 수행했습니다. 수차례의 근접 공중전에 참여하는 동안 여러 건의 공식 인정 격추 기록을 세웠으며, 1944년 6월부터는 V1 비행폭탄 요격 임무에 특화되어 무려 11발의 비행폭탄을 격추하는 대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최후의 비행: 병원을 지키기 위한 특공
1944년 8월 3일, 위험한 요격 임무를 수행하던 대위 마리도르는 한 발의 V1 비행폭탄이 베넨덴 병원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공중에서 격추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주저 없이 기체를 최고 속도로 돌진시켜 V1과 충돌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바쳐 11번째 비행폭탄을 파괴했고, 소중한 생명들이 모여 있는 병원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런던 근교에 안장되었다가 1948년 프랑스로 송환되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19일, 고향 르아브르에서 성대한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명예와 전적
마리도르는 공식 인정된 4회의 격추(단독 3회, 협동 1회), 2회의 추정 격추, 3회의 기체 손상 기록을 보유했으며, 여기에 더해 20척의 적 선박을 침몰시킨 전과를 남겼습니다.
수여받은 훈장
- 해방 동료 훈장(컴패니언 오브 리버레이션)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코망되르(사령관) 등급
- 우수 비행 십자장(DFC) 및 클러스터
- 1939-45 전십자장(크루아 드 게르) 팔회 전공 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