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루이스(L'Écluse)는 즈빈(Zwin) 하구에 위치한 네덜란드 마을 슬라위스(Sluis)를 가리키는 프랑스식 이름입니다. 1340년 6월 24일, 이곳에서 백년전쟁 최초의 대규모 무력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프랑스 함대의 결집
당시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는 수년간 계속 연기되던 십자군 원정을 대비하여 막대한 규모의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1340년 6월, 국왕은 플랑드르 상륙을 계획하던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의 선단을 저지하기 위해 이 함대에 출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함대의 지휘는 용맹한 제노바 출신 선장 바르바베라(Barbavera)와, 전투 경험이 부족한 두 명의 프랑스 지휘관 키에레(Quiéret)와 베위셰(Béhuchet)가 맡았습니다.
전투의 전개
6월 24일, 프랑스 함대는 슬루이스 앞바다에 정박한 채 배들을 서로 단단히 묶어 두고 있었고, 바로 그때 적선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프랑스군은 외해로 진출해 기동성을 발휘하는 대신 제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전투는 아침에 시작되었으며, 잉글랜드의 장궁병들은 빠른 화살 공세로 느린 노르만 및 제노바 석궁병들을 순식간에 압도했습니다. 다만 잉글랜드의 완전한 승리는 하루가 저물 무렵, 플랑드르 함대가 에드워드 3세의 함대에 합류하면서 비로소 확정되었습니다.
처참한 결과와 역사적 의미
약 200척에 달했던 프랑스 함대 중 탈출에 성공한 배는 겨우 30척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지휘관 키에레는 참수된 뒤 시신이 바다에 던져졌고, 베위셰는 돛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슬루이스 해전의 승리로 잉글랜드는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해상 지배권을 확고히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백년전쟁의 향후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