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 데나리우스 은화 과학 분석, 키케로가 암시한 기원전 86년 통화 위기의 실체를 밝히다

고대 로마 데나리우스(Denarius) 은화에 대한 최신 과학적 분석이 로마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도덕론 저서 De Officiis(의무론)에서 짧게 언급했던 금융 위기의 실체를 규명하며, 오랫동안 이어져 온 역사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영국 워릭 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와 리버풀 대학교(University of Liverpool) 공동 연구팀이 당시 주화를 정밀 분석한 결과, 기원전 90년 이전까지 순은이었던 데나리우스가 역사학자들의 추정보다 훨씬 심각하게 가치 하락을 겪었으며, 불과 5년 만에 최대 10%의 구리가 혼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리버풀 대학교의 매슈 폰팅(Matthew Ponting)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오랫동안 품질 우수한 은화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데나리우스가 더 이상 순은이 아니게 되자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확한 가치 하락 수치보다도, '이 동전이 더 이상 진짜 은이 아니다'라는 인식 자체가 훨씬 중요했을 것입니다."

워릭 대학교의 케빈 부처(Kevin Butcher)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데나리우스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발견은 기원전 86년에 있었던 통화 위기를 키케로가 언급한 대목에 새로운 빛을 던져 줍니다. 역사가들은 그가 '통화가 뒤섞여 누구도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De Officiis, 3:80)고 썼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퍼즐을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로마 데나리우스 은화 과학 분석, 키케로가 암시한 기원전 86년 통화 위기의 실체를 밝히다

키케로의 이 언급은 마르코 마리우스 그라티디아누스(Marcus Marius Gratidianus)의 자의적인 행동을 지적하는 일화의 일부입니다. 호민관과 재무관이 공동으로 추진한 통화 개혁의 성과를 그라티디아누스가 홀로 차지하면서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화폐가 '뒤섞인' 원인은 무엇이며, 그라티디아누스는 어떤 해결책을 자신의 공로로 내세웠던 걸까요?

이번 연구는 '기원전 200년~서기 64년 로마 및 지중해 화폐(Rome and the Mediterranean Coinage, BC 200–AD 64)'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유럽연합(EU) 연구위원회(ERC)가 5년간 자금을 지원하는 이 연구는 주화의 물질 구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역사 기록과 교차 검증함으로써, 고대 로마를 비롯한 지중해권 국가들의 경제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연구팀은 워릭 대학교 케빈 부처 교수, 리버플 대학교 매슈 폰팅 박사, 그리고 ISIS 중성자·뮤온 시설(ISIS Neutron and Muon Facility), STFC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STFC Rutherford Appleton Laboratory)의 에이드리언 힐리어(Adrian Hillier) 박사로 구성되었습니다.

폰팅 박사는 "귀중한 주화에 최소한의 손상만 가하는 미세 샘플링 기법을 적용한 결과, 데나리우스의 가치가 상당히 하락했음이 확인됐습니다. 순은 동전이었던 데나리우스는 처음으로 순도 95% 미만으로 떨어졌고, 이후 다시 하락해 90% 수준에 이르렀으며, 일부 동전은 86%까지 낮아졌습니다. 이는 심각한 통화 위기를 시사하는 수치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로마 데나리우스 은화 과학 분석, 키케로가 암시한 기원전 86년 통화 위기의 실체를 밝히다

부처 교수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기원전 91년 이후 로마 국가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탈리아 내 동맹국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전쟁이 끝난 직후인 기원전 89년에는 부채 위기가 닥쳤습니다. 기원전 86년에는 화폐에 대한 신뢰 위기까지 겹친 것으로 보입니다. 키케로는 그라티디아누스가 공동 성과를 독차지하기 전, 로마의 호민관들이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거쳤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 이론은 그라티디아누스가 은화 데나리우스와 청동 아스(as, 최근 중량이 축소된 바 있음) 사이의 환율을 고정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론은 위조 데나리우스 감별법을 공포하여 화폐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키케로의 표현은 역사가들이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기에는 너무 모호합니다. 그가 이를 기록한 목적 자체가 화폐사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둔갑시킨 로마 관료의 잘못된 행동 사례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동안 학계는 기원전 89~87년 사이 데나리우스의 가치가 아주 소폭 하락한 것에 그쳤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외환 위기를 촉발할 만큼 충분했을까요?" 금속학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 시기 로마가 겪은 재정난으로 인해 기원전 90년 조폐 기준이 완화되면서 주화의 은 함량이 두 단계에 걸쳐 감소했고, 기원전 87년에는 해당 동전에 의도적으로 5~10%의 구리가 합금되었습니다.

부처 교수는 "이것이야말로 키케로의 말의 의미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동전이 순은인지 아닌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화폐의 가치가 '뒤섞였다'고 표현된 것이지요. 더욱 주목할 점은 그라티디아누스가 칙령을 반포할 즈음 순도 기준이 급격히 회복되어, 가치 하락이 되돌려지고 데나리우스가 고금질 화폐로 복원되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새로운 과학 데이터에 따르면 은·동 환율 고정이나 위조품 감별보다 순도 회복 자체가 그라티디아누스 칙령의 핵심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로마는 폼페이우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내전으로 국가 지출이 다시 폭증하기 전까지 데나리우스의 가치 하락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 조폐국은 그라티디아누스 시대가 이룬 수준을 다시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성과는 기원전 150년경부터 서기 64년경까지 지중해권 국가들의 재정·통화 전략과 주요 주조 개혁을 조사하는 EU 대형 연구 사업의 일부로, 해당 시기 모든 주요 은화 주조물의 화학 성분에 대한 상세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석 데이터 세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