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웨식스 왕국: 잉글랜드 통일의 초석이 된 앵글로색슨 왕국

웨식스 왕국: 잉글랜드 통일의 초석이 된 앵글로색슨 왕국

웨식스(Wessex)는 중세 잉글랜드에서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왕국 중 하나로, 그레이트브리튼 섬 남서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켈트계 왕국 돔노네(Domnonée), 북쪽으로는 머시아(Mercia), 동쪽으로는 켄트·서식스·에식스 왕국과 경계를 이루었다.

9세기 웨식스는 바이킹의 침략에 맞서 버틴 마지막 앵글로색슨 왕국이었다. 알프레드 대왕(871~899)은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의 후계자들은 고대 앵글로색슨 왕국 전역을 정복하여 잉글랜드 왕국을 탄생시켰다. 웨식스 왕조는 에드워드 참회왕이 사망한 1066년까지 잉글랜드를 다스렸으며, 그 직후 노르만 정복이 이어졌다.

기원

앵글로색슨 연대기(Anglo-Saxon Chronicle)에 따르면 웨식스는 495년 체르딕(Cerdic) 추장이 햄프셔 해안에 상륙하면서 건국되었다. 그는 웨식스 왕가의 시조로 여겨진다. 508년에는 넷틀리 전투에서 브리튼 왕 나탈레오드를 격파했고, 사우샘프턴 북쪽 체디스퍼드(Charford) 전투 이후 서색슨인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530년에는 와이트섬을 정복했으며, 534년 사망하면서 아들(또는 손자) 킨릭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킨릭의 재위 기간은 자료에 따라 17년 또는 26년으로 기록된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500년경 배든산 전투에서 브리튼인에게 패한 색슨군의 지도자로 보기도 하는데, 이 전투는 브리튼인에 대한 마지막 대규모 패배로 꼽힌다. 그는 생애 말기인 552년 솔즈베리 인근의 올드 새럼을 함락시켰다.

560년 즉위한 아들 체올린(Ceawlin)은 베다 베네라빌리스에 의해 브레트왈다(bretwalda), 즉 잉글랜드 내 앵글로색슨 왕국들의 일부 혹은 전체를 통괄하는 지도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는 591년 체올에게 폐위되었고, 체올 역시 597년 동생 체올울프에게 같은 운명을 맞았다. 체올울프는 왕국에 지속적인 평화를 안정시키지 못한 채 611년 사망할 때까지 통치했으며, 조카 키네길스가 뒤를 이었다.

키네길스는 634년 교황 호노리우스 1세가 파견한 선교사 비리누스(Birinus)가 왕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 것을 허락했다. 비리누스는 도체스터를 하사받아 그곳에 주교좌를 설치했고, 그 대가로 다음 해 키네길스에게 세례를 베풀어 그를 웨식스 최초의 기독교 왕으로 만들었다.

7~8세기 동안 펜다 왕과 그 후계자들이 다스린 머시아는 잉글랜드의 패권을 쥐고 있었고, 웨식스 역시 다른 앵글로색슨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그 공세에 시달렸다. 템스강과 에번 강 북쪽 영토를 머시아에 빼앗기자 웨식스는 남쪽, 특히 데번과 돔노네 방면으로 세력 확장에 나섰다.

패권으로의 성장

에그버트(Egbert)의 즉위는 웨식스가 칠왕국(Heptarchy)의 다른 왕국들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 813년부터 825년 사이 에그버트는 남서부의 켈트족을 타머 강 너머로 밀어냈고, 이 지역은 훗날 코른월이 되어 웨식스의 공식적인 속령이 되었다.

825년 엘렌던 전투는 머시아 패권의 종언을 고했다. 전투 이후 에그버트는 켄트와 에식스를 침공해 자신의 영토에 합병했으며, 서리와 서식스도 차례로 복속시켰다. 829년에는 마침내 머시아를 침공해 왕 위글라프를 추방했고, 같은 해 노섬브리아도 도레(Dore)에서 그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이로써 에그버트는 통일 색슨 잉글랜드의 첫 번째 군주가 되었고, 한동안 머시아까지 직접 지배했다.

바이킹과의 전쟁

839년 에그버트가 사망하자 영토는 두 아들에게 나뉘었다. 웨식스를 다스린 애설울프(Æthelwulf)와 켄트 부왕이 된 애설스탄(Æthelstan)이 그들이다. 애설울프의 재위는 865년 덴마크 바이킹이 잉글랜드 동해안에 도래하면서 큰 시련을 맞았다. 그들의 '대군(Great Army)'은 요크 주변에 스칸디나비아 왕국을 빠르게 세웠다. 바이킹들은 웨식스에 여러 차례 습격을 감행했으나, 애설울프의 아들이자 865~871년 재위한 애설레드 왕과 특히 알프레드 대왕의 군대에 의해 모두 격퇴되었다.

알프레드의 통치는 871년 형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의 정책의 핵심은 덴마크인들을 상대로 소모전을 벌이는 것이었고, 끝내 897년 그들을 완전히 격파했다. 그의 영토는 칠왕국 거의 전역으로 확장되어 덴마크인들은 잉글랜드 동해안으로 밀려나야 했다. 바이킹에 대한 승리는 행정·재정·군사 분야의 개혁, 특히 상비 해군 창설을 통해 왕국을 재편하는 발판이 되었다. 교육과 사법 등 앵글로색슨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도 그의 업적은 부정할 수 없으며, 이런 공로로 그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유일한 영국 군주가 되었다.

899년 알프레드 대왕이 사망하자 아들 장로 에드워드(Edward the Elder)가 뒤를 이었다. 그는 매제 머시아의 애설레드와 누이 애설플래드(Æthelflæd)와 함께 바이킹과 싸우며 적극적인 확장 정책을 펼쳐 덴마크 영토를 점령하고 요새화했다. 918년 에드워드는 험버 강 이남 잉글랜드 전역을 장악했다. 같은 해 애설플래드의 죽음으로 머시아는 웨식스에 완전히 통합되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924년 잉글랜드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야망을 실현한 것은 아들 애설스탄이었다. 927년 노섬브리아를 정복한 그는 잉글랜드 전역을 직접 통치한 최초의 군주가 되었다. 애설스탄의 팽창 정책은 잉글랜드에만 머물지 않았다. 웨일스까지 정복한 그는 스코틀랜드에도 관심을 두고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을 침공했으며, 937년 브루난버흐 전투에서 그 남부를 정복했다. '영광의 애설스탄'의 통치기에 웨식스의 운명은 잉글랜드의 운명과 하나로 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