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B. 맥과이어 주니어(Thomas B. McGuire Jr.)는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선에서 딕 봉(Richard Bong)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격추 기록을 세운 미 육군항공대의 전설적인 에이스다. 짧은 전투기 조종사 인생 동안 그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고, 동료 에이스와 벌인 추격전으로 '투 비하인드(Two Behind)'라는 별명을 얻었다.
알래스카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1920년 8월 1일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태어난 맥과이어는 1942년 2월 장교로 임관한 뒤 알래스카에 주둔하는 항공 부대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본기와 마주칠 기회는 드물었다. 1943년 3월에는 제5공군 산하 제49전투비행단에 배속되어 호주로 옮겼지만, 여기서도 실전 경험을 쌓기는 어려웠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43년 8월, 제475전투비행단 예하에 새로 창설되는 제431전투비행중대에 차출되면서부터였다.
웨왁 상공, 폭발적인 시작
새 부대는 파푸아뉴기니의 웨왁(Wewak) 상공에서 임무를 시작했다. 맥과이어는 시간 낭비 없이 곧바로 본격에 뛰어들었다. 8월 18일 그는 일본 전투기 3대, 즉 '제로' 2대와 '토니' 1대를 격추했다고 보고했다. 다만 당시 웨왁에는 일본 해군 항공대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제로로 알려진 기체들은 실제로는 육군의 '오스카'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흘 뒤에는 2대를 추가로 격추해 미국 기준으로 에이스 반열에 올랐다. 23세의 젊은 텍사스 출신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0월 17일에는 오로만(Oro Bay)에서 제크 3대를 격추하며 공식 전적을 13승으로 늘렸고, 12월 26일에는 함상폭격기 '발' 3대를 추가해 단 네 달 반 만에 16승으로 1943년을 마무리했다.
다만 매번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0월 17일의 공중전에서 맥과이어는 제로에게 피격되어 낙하산으로 탈출해야 했고, 가벼운 부상으로 두 달간 전선에서 물러나 있어야 했다.
딕 봉을 쫓는 추격전
1944년 상반기에는 일본 항공부대가 뉴기니 상공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에 큰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같은 해 7월 17일 롤로바타(Lolobata) 상공에서 오스카 1대를 격추하며 그해 다섯 번째 승리를 기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는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던 필리핀으로 이동했다.
바로 이 무렵부터 맥과이어는 동료 에이스 딕 봉의 왕좌를 넘보는 경쟁에 나섰다. 이 추격전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투 비하인드'라는 다소 씁쓸한 별명도 안겨주었다. 맥과이어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마다 역시 제5공군 소속으로 필리핀에서 싸우던 봉도 함께 전과를 올리는 바람에, 두 에이스 사이의 격차는 늘 비슷하게 유지되었던 것이다.
12월 13일 맥과이어는 네그로스섬 상공에서 '잭' 1대를 격추했다. 그 옆에서 또 한 대의 P-38이 같은 전과를 올렸는데, 그 조종사는 다름 아닌 리처드 봉이었다.
38승까지
12월 25일 맥과이어는 말라바캣(Malabacat) 비행장 상공에서 폭격기 호위 임무에 나섰다. 일본기 20여 대가 기습적으로 덮쳤고, 맥과이어는 이 가운데 3대를 격추했다. 이것이 그의 34번째 승리였다. 다음 날에는 클라크 비행장 상공에서 B-24 편대를 호위하며 A6M5 4대를 격추해 전적을 38승으로 끌어올렸다. 봉은 40승. 여전히 2승 차이였다.
사흘 뒤인 12월 29일, 리처드 봉은 미국 본토로 귀환했고 그의 전쟁은 끝났다. 이제 맥과이어는 '미국 최고의 에이스'라는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45년 1월 7일, 마지막 비행
1945년 1월 7일 오전 6시 20분, 맥과이어는 스롭(Thropp) 중위, 리트메이어(Rittmayer) 소령, 위버(Weaver) 대위와 함께 네그로스섬 파브리카(Fabrica) 비행장 상공 임무를 위해 이륙했다. 오전 7시경 세 대의 P-38이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고립된 제로 한 대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기체는 실제로 제5비행전대의 스기모토(Sugimoto) 준위가 조종하는 오스카로, 임무를 마치고 귀환 중이었다. 완전히 혼자였던 것도 아니었다. 제71비행전대의 후쿠다(Fukuda) 하사가 조종하는 '프랭크'와 같은 항로를 나란히 날고 있었고, 프랭크는 이때 막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맥과이어는 세 명의 호위기를 데리고 첫 번째 일본기 쪽으로 좌선회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서로 엇갈린다. 위버는 오스카가 급격히 선회했고, 그 급기동 때문에 맥과이어의 P-38 날개가 뒤틀려 부러져 나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황을 지켜보던 후쿠다는 속도와 고도를 회복한 뒤 스기모토가 정면 통과 과정에서 사격을 개시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원인은 다소 미궁 속에 남아 있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날개가 부서진 P-38은 추락했고, 토머스 맥과이어는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그는 '투 비하인드'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남긴 것들
맥과이어는 38승이라는 공식 전적을 남기고 2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사후 미국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받았으며, 오늘날까지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격추 기록을 보유한 에이스로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