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약 8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망원경을 발명한 갈릴레이가 태어난 도시, 피사가 있다. 그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울어진 탑'이 서 있다. 우리 가족은 이날 아침 피사를 다녀오기 위해 피렌체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표 한 장 얻기가 녹록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피사까지는 30분 간격으로 기차가 운행된다. 기차역 안은 넓은 홀이 여러 개 있었고, 각 홀마다 매표창구가 즐비했다. 그런데 하나의 홀에만 스무 개가 넘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문제는 피사행 표를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창구마다 안내문이 오직 이탈리아어로만 적혀 있었다. 마치 인도의 펀자브나 안드라프라데시 같은 지방역에서, 역이든 버스든 모든 안내가 현지 언어로만 되어 있는 상황과 흡사했다.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 회사는 피사행 표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곳저곳 수소문한 끝에 겨우 피사행 매표장을 찾아내고 긴 줄에 합류할 수 있었다. 줄을 서다 보니 터번을 두른 인도계 남성(사르다르지)이 눈에 들어왔다. 힌디어는 몰라도 영어는 알아들을 것 같아 물어봤더니,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짧게 외쳤다. "저쪽으로 가!"
그가 가리킨 곳은 담배부터 열쇠고리, 지갑, 벨트까지 파는 작은 매점이었다. 카운터에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는데, 손놀림이 무척 느린 데다 복사 업무까지 겸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짧은 거리에 만만치 않은 운임
표값은 만만치 않았다. 한 시간 거리에 인당 8.6유로, 우리 돈으로 약 688루피씩이나 받은 것이다. 표를 들고 승강장 대합실로 돌아와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우리 열차의 번호가 뜨기를 기다렸다. 전광판에 승강장 번호가 뜨는 순간, 출발 시각이 임박했기에 빠른 걸음으로 플랫폼을 향해 달렸다.
탑승하자마자 기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마치 우리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차안은 혼잡하지 않으면서도 텅 비지 않았다. 우리처럼 피사를 향하는 관광객이 수천 명은 될 듯했다.
마두 옆자리에 앉은 한 유럽 여성이 마두의 사리를 살짝 만지며 물었다. "그거 전부예요?" 마두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정말 아름답네요. 인도 여성들이 입는 거군요"라며 신기해했다. 마두가 웃으며 동의해 주자 그녀는 더없이 기뻐했다. 우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탈리아 가족들을 바라보듯, 그녀 역시 인도 가족을 이토록 가까이 본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 출신일지도 몰랐다.
드디어, 기울어진 탑 앞에서
낮 12시 30분쯤 피사역에 내렸다. 역 밖에서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이곳에는 트램 노선이 없었다. 버스 매표소는 승강장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고, 내리자마자 눈앞에 피사의 탑이 나타났다.
그곳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누구든 피사의 탑 앞에 서면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탑은 자체 축선으로 최소 10~12도나 기울어져 있는데, 저렇게 높은 건물이 그만큼 기울어진 채로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탑은 반질반질하게 잘 손질되어 있어, 마치 오늘 새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
쓰러짐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탑 주변을 파내고 밑바닥까지 시멘트 콘크리트를 부어 보강하는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때 이후로 탑은 더 이상 기울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피사는 피렌체보다 좀 더 쌀쌀했다. 그래서 햇살이 오히려 반가웠다. 아버지는 탑 부지에 들어서자마자 널찍한 잔디밭 위에 드러누웠다. 다행히 이날 폴리에틸렌 우비를 가져오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 우비들이 베개 역할을 해 주었다. 우리는 그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로마나 피렌체와 달리 이곳에는 무료 공공 편의시설이 없었다. 화장실 사용에 0.8유로, 우리 돈으로 64루피씩이나 내야 했다.
여권이 사라졌다?!
잔디밭에 앉아 식사 중이던 어느 순간, 문득 내 주머니가 걱정됐다. 마두와 내 여권이 그 주머니에 있었는데, 이 순간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떨어뜨렸거나 어딘가에 두고 왔거나, 아니면 주머니가 도둑맞았을 가능성도 생각했다.
걱정을 마두와 비제이에게 털어놓자, 마두가 지난 저녁 여권을 내 가방에 넣어 두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불안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는 법. 결국 원래라면 한 시간 더 머물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하고 오후 3시 30분쯤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등 뒤에서 아버지의 부르声 을 들었다. 돌아보니 아버지는 우리 뒤 20~25걸음 거리에서 허둥허둥 다가오고 있었다. 아버지 말로는 방금 소매치기 두 명에게 포위당했었다고 한다. 한 명은 시간을 묻는 척하며 아버지의 시선을 손목시계로 끌고, 그 사이 다른 한 명은 뒤에서 손을 뻗어 아버지의 kurta(인도식 상의) 양쪽口袋 에 손을 넣고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가 큰 소리로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외치자, 두 사람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달아났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낮 대낮,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감히 그런 행동을 하다니! 이탈리아 경찰이 이들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소매치기를 하며 돌아다닌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텐데.
'BILIGETTIE'가 적힌 곳에서 표를
탑 부지를 나온 우리는 버스 표를 찾아 헤메였다. 이제는 표를 파는 가게에는 'BILIGETTIE'라고 적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상태였다. 한 식당 앞에 그 단어가 보였고, 들어가 보니 기차 안에서 마두의 사리를 물어봤던 바로 그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표를 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식당 앞에서는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몇 분 만에 피사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겨우 세 개의 매표창구가 있었다. 한 창구 앞에 줄을 섰는데, 내 차례가 다가오자 비제이가 다가와 자판기에서 이미 표를 끊었다고 알려줬다. 나는 줄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곳 철도회사가 매표창구에 스티커를 붙여 관광객들에게 경고하고 있다는 것. 표를 끊을 때 주머니를 조심하라는 것, 이곳에서는 주머니가 도둑맞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갈릴레이의 피사가 이제 소매치기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플로렌체로 돌아가다
플로렌체에 도착하자마자 아침에 표를 끊었던 그 역 안 키오스크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다른 여성 직원이 근무 중이었다. 여권을 발견하지 못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즉시 경찰에 신고하라고 권했다. 우리는 경찰에 연락하는 대신 먼저 서비스 아파트로 돌아가 가방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트램을 타지 않고 걸어서 아파트로 돌아갔다. 1킬로미터를 걸은 것뿐인데, 5인분 트램 표 값 1.5유로씩, 총 600루피를 아낄 수 있었다. 집에 들어섰을 때는 저녁 5시 30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여권은 그대로 가방 안에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이 짧은 여행의 지출을 계산해 보았다. 기차, 버스, 트램 표로만 9,280루피가 들었다. 먹고마는 것은 이탈리아 가게에서 우리가 살 만한 것이 없어 지출이 없었고, 화장실 요금도 당연히 아낄 수 없는 돈이었다.
차를 마시며 우리는 다시 한번 인도 총선 개표 상황을 지켜보았다. 인도는 이때 밤 9시.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선거구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BJP의 '이번엔 300을 넘겨본다(Ab ki baar three hundred paar)'는 구호가 현실이 되었고, NDA는 '330+' 의석을 확보했다. 문득 예전에 어떤 이탈리아 정당이 인도 총선에서 과반 의석수인 '272(To Seventy Two)'를 구호로 내걸었다가, 언론들이 '너 세븐티 투(Tu sevanti tu)'로 비틀어 부르며 흥정하듯 굴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방의 비상사태
마두가 알려주길, 이번 여행에서는 atta(밀가루)가 예상보다 빨리 바닥난다고 했다. 그래서 로마 집주인이 준 메이다(정제 밀가루) 1kg에, 바누가 노이다에서 가져온 수지(세몰리나) 1kg과 병아리콩가루 1kg을 섞어 양을 늘리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여행에서는 쌀, 포하(평챙), 죽을 거의 먹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침에 포하를, 저녁에는 쌀밥과 죽, 키치디를 해 먹었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점심에만 chapati를 부쳤고, 아침에는 paratha를, 점심과 저녁에는 chapati를 만들다 보니 밀가루 소모가 빨랐던 것이다. 그래서 이날부터 주방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한 끼는 죽이나 키치디, 쌀밥 등으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틀째 일기를 못 쓰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 외출 대신 집에 앉아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오늘은 하루 치 일기를 쓰고, 하루 치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